매일신문

대구에 온 프랑스 미래학자 '기 소르망'을 만나다

"남북은 만남 그 자체가 목적돼야"

영남대 초청으로 2일 영남대 경산 캠퍼스를 방문한 프랑스의 저명한 미래학자 기 소르망(Guy Sorman) 전 파리대 교수는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남과 북이 만난 것은 중요하다."며 "만남의 목적을 만남 그 자체에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르망 교수는 그러나 1990년대 중후반 프랑스 정부에서 북한담당 업무를 맡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북한을 너무 믿는 것은 아직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무척 줄어든 것은 사실이고, 통일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도 분명하다."고 했다.

"북한은 여전히 체제유지를 원하고 있는 만큼, 통일이 가까워졌다고 낙관만은 할 수 없습니다." 남북한 사람들을 다 만나보았지만, 문화적인 이질감이나 사고의 차이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는 소르망 교수는 "다른 것은 두 체제의 리더들"이라고 했다.

"남북통일의 걸림돌은 북한과 중국입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로 강대한 국가가 국경을 접하게 되기를 원치 않지요. 그래서 겉으로는 북핵화에 반대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을 조정하려는 이중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소르망 교수는 그러나 "일본은 남북통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의외의 발언을 했다. 한반도 비핵화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최근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 대해서는 "개발도상국가들에게 있어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놀랄만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을 지적했다. 문제는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자유주의적 경제'의 미비라는 것이다.

소르망 교수는 "중요한 것은 분배(distribution)"임을 거듭 강조하며, "민주주의 국가는 분배에 있어서 훨씬 우월하며, 중국에서는 20%만 분배의 혜택을 누리고 있을 뿐 80%는 체제 밖에서 소외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라는 거짓말'이란 저서 등을 통해서 밝혔던 "중국의 경제적 성과는 진보성이 없다."는 평가에 대한 연장선상의 이야기이다.

그는 북한에서 반체제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거의 없다."고 단언하며, "인민들이 조직화할 힘이 없고, 감시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개성 자유무역지대를 활성화하고 경제협력과 관광사업 등을 더욱 활성화해 점진적으로(step-by-step) 통일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갑작스런 북한의 체제붕괴에도 대응할 준비를 해야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소르망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를 주문하자, "노정권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국내에서 처럼 그리 나쁘지는 않다."며 "한국에서는 지지율이 20%를 밑돈다고 하는데 외국에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개방화에 대한 공로를 높이 샀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훨씬 능동적이 되었고,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입니다. 햇빛정책에 대해서도 한국 내에서는 논란이 많지만, 계승해야 한다고 봅니다. 소르망 교수는 그러나 "결과에 대한 너무나 많은 기대는 곤란하다."고 했다.

"세계화(Globalization)야 말로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도 긍정적인 힘'"이라는 평소에 지론에 대해 '세계화에 대한 비판론자'들은 '문화의 미국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하자,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라고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세계화는 미국 문화제국주의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한류(韓流)를 보라'고 했다. "중국은 요즘 한국의 록음악에 지배당했고,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와 한국가수들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이것을 문화제국주의라고 하지는 않지요." 그는 "세계화는 세계의 다양한 문화들과 소통하는 것"이라며 "미국은 그 다양한 요소들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비록 미국 대중산업계가 크고 힘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선택은 사람들이 한다는 것이다.

소르망 교수는 마지막으로 '인류의 문명이 과연 어디까지 발전해야 하는 것인지', '인류의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인류문명은 진보하고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수백만 명이 굶어죽었고, 질병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다릅니다. 이것이 '진보'입니다. 인류문명의 미래를 판단하는 데 주요한 것은 가치기준이지요. 내 경우에는 '오래 살고, 잘 사는 것(to live long and better life)'에 기준을 두고 있습니다. 낙관주의라는 비판도 있지만, 난 현실주의자입니다. 모든 지표(index), 즉 경제·보건·교육·복지 등의 요소들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

조향래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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