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밀양 '꽃새미 마을' 의 가을

황금빛 수확의 기쁨을 준비하는 들녘엔 가을이 조금씩 제 빛을 띠어가고 있다.

높디높은 하늘 아래서 속을 차곡차곡 채워가는 벼이삭들이 바람을 맞아 출렁이는가 하면 건너 편 농가 처마 옆에선 주홍빛 선명한 감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다. 제 몸을 지탱하기 어려워 땅을 향해 길게 늘어뜨린 수세미와 누런 콩대 옆에 연분홍 꽃을 피운 봉숭아도 새삼 정겹게 다가온다.

거둬들인 깨를 터는 노부부의 손길에도 가을이 소복이 내려 앉아 있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과 팔뚝에 돋아난 굵은 힘줄이 억센 농사일의 고단함을 일깨워주지만 낯선 이들을 살갑게 맞는 인정은 고향에 온 듯 편안하다.

가을의 정취를 담기위해 떠난 밀양 들녘과 띄엄띄엄 늘어선 시골농가들의 모습은 그래서 더 싱그럽고 넉넉해 보인다.

차장 너머 불어오는 상쾌한 가을바람과 마음 속 가득 여유로움을 채우고 찾은 밀양시 초동면 봉황리 '꽃새미 마을'도 어느 새 가을이 가득 물들고 있었다.

꽃새미란 연중 꽃이 샘솟듯 피어나는 동네이길 바라는 주민들의 염원을 담은 동네 이름.

그 때문일까. 다양한 종류의 허브와 향기 짙은 나무, 야생화가 소담스럽게 피어 있는 앙증맞은 시골동네로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올해 가을 정취를 만끽해볼만한 장소로 추천된 곳이다.

이 가을. 꽃새미 마을에서 고향의 정취와 고즈넉한 한 때를 즐겼다.

태백산맥 끝자락인 종남산(670여m) 자락, 봉황이 활개 치는 형상의 볕 좋은 곳인 해발 250~300m에 자리한 '꽃새미 마을'은 25가구가 오순도순 사는 산골동네다.

이곳이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최적의 마을 중 한 곳으로 선정된 까닭은 토박이 농사꾼 손정태(48) 씨가 15여년에 걸쳐 직접 땅을 개간하고 다듬은 '참샘허브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장승이 내방객을 제 먼저 맞는 마을 입구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 5천 여 평에 조성된 울타리 없는 참샘허브나라라는 작고 예쁘장한 목재팻말부터 시작된다.

◆돌탑을 따라 걷는 농장 체험

천년의 샘이라고 이름붙인 작은 연못에 맑은 가을하늘이 다소곳이 내려앉아 있는 농장 초입. 커다란 바위와 돌장승, 정성스레 쌓아 올린 돌탑이 인도하는 농장 안에 들어서는 순간 어디선가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향기의 출처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중 엷은 노란색의 작은 꽃 뭉치들이 녹색 잎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무가 눈에 띈다. 향기의 진원은 바로 조경식물원 한 가운데서 만리향을 뿜고 있는 물푸레나무과의 목서나무다.

서향(瑞香)이라 불리는 만리향은 그 이름처럼 상서로운 향기다. 아니나 다를까 농장 곳곳에서 이 만리향이 맡아진다. 기분 좋은 향기 덕에 쌓인 피로가 말끔히 씻겨나가는 느낌이다.

가벼워진 발걸음을 따라 돌탑들이 이끄는 대로 농장 깊숙이 들어섰다. 문득 이 많은 돌탑을 누가 쌓았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농장을 개간하던 중 많은 돌이 나오자 기왕이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돌탑을 둘러보며 근심을 덜어내라는 의미에서 손 씨 부부가 6년에 걸쳐 하나 둘씩 쌓게 되면서 그 개수도 108개로 맞추었다는 설명이다. 정성에 놀랍다.

돌탑 사이엔 가을 야생화들이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자라고 있고 농장을 가로지르는 개울가엔 통나무 그네와 가마솥을 모자처럼 씌운 아름드리 목재장승도 있다. 그 아래엔 망치가 걸려 있어 미운 사람이 있다면 망치로 가마솥을 힘주어 친 후 미움을 개울물에 흘려보내라는 뜻으로 세워놓았다.

통나무 그네에 앉아 몸을 흔들어 봤다. 따스한 햇살이 호두나무 잎 사이로 흩뿌려지는 가운데 툭하고 호두알이 떨어지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청설모 한 마리가 잽싸게 물고 간다. 산골 마을이라서 야생동물들이 심심찮게 마을로 내려온다는 귀띔이다.

농장 한 켠 야생화와 허브가 흐드러진 작은 언덕엔 30m길이의 레일바이크도 설치돼 있다. 레일 바이크 옆 정자에 올라 산을 바라보자 종남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꽃새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개울건너 다락 논엔 고개 숙인 벼이삭 사이로 메뚜기가 뛰놀고 그 너머 과수원엔 키 낮은 단감나무는 열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지 끝을 땅으로 향하고 있다. 손만 내밀면 계절의 수확물을 손쉽게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마음 한 구석에 가을이 주는 넉넉함이 쌓여간다.

◆그리운 고향정서와 까치밥의 여유

참샘허브나라 뒤쪽 언덕길을 따라 가면 아담한 황토 집 7동이 그림처럼 나란히 있다. 돌과 흙을 빚어 벽을 쌓고 기와로 지붕을 얹은 황토 집은 하룻밤 쉬면서 낮에는 볼 수 없는 밤하늘의 별과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던 고향의 정서에 흠뻑 빠져보기에 안성맞춤이다. 구조도 온돌방에 군불을 때도록 지어져 있다.

마당 한 쪽엔 낮은 담장을 두르고 그 안엔 크고 작은 장독들이 놓여 있어 마치 고향 집에 온 기분이 든다. 우리네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옹기가 주는 푸근함 때문일 것이다.

마루에 걸터앉아 먼 곳을 보자 어느 집 담장 너머로 솟은 감나무에 홍시가 되어가는 감들이 대롱거린다. 잎은 벌써 진 뒤여서 더욱 앙상해 보이는 검은 가지에 달린 주황색 열매가 산골의 한가로움과 가을정치를 물씬 풍기게 한다.

이 가을이 깊어 가면 높다란 감나무 꼭대기엔 미물을 위해 남겨둘 까치밥의 여유도 볼 수 있으리라. (황토 집 1박 4인기준 3만~5만원)

◆허브와 허브향의 체험

비닐하우스 한 동에 지어진 허브나라에 들면 센티드 제라늄, 말로우, 로즈마리, 타임, 부캔 베리라 등 70여종의 허브가 저마다 고유 향기를 품고 관람객을 기다린다.

이름이 생소한 허브를 구경하노라면 한 쪽에선 인상 좋은 농장 안주인이 권하는 허브 차를 음미 할 수 있다. 철거덕 철거덕 물길을 끌어 돌게 만든 작은 물레방아도 쉼 없이 돌아간다. 향기로운 허브차향과 물레방아가 내는 소리가 혀와 코끝, 귓전을 자극하며 공감각적인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

10명을 기준으로 단체 신청을 하면 별도의 체험공간에서 허브 화분 만들기를 비롯해 비누, 양초,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다.

허브 외에도 고구마 캐기, 단감 따기 등 다양한 농촌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이 달 중순부터 가능한 단감 따기는 3천원의 비용으로 개인별 1kg씩 단감을 수확해 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체험문의:055-391-3825)

◇여행팁

꽃새미 마을이 자리한 초동면에서 거슬러 무안면소재지로 방향을 잡으면 표충비를 모셔놓은 표충비각공원을 만날 수 있으며 그리 멀지 않는 곳에 김종직 생가와 조선시대 양반가옥 구조를 잘 보전한 어변당, 도산서원과 더불어 영남 유생들의 학문장소였던 예림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표충비는 임란 때 국난을 극복한 사명당의 뜻을 새긴 비석으로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비면에 땀방울이 맺히는 한비(汗碑)로 유명하다.

한편 꽃새미 마을 입구에 있는 봉황저수지는 알려지지 않은 낚시터로 특히 새벽녘 물안개가 멋스러우며 마을 뒷산인 종남산 등산로(1,7km)를 오르면 정상에 봉화대도 볼 수 있다.

참샘허브나라에서는 허브새싹비빔밥(6천원)과 허브를 첨가한 닭, 오리백숙(3만원)도 제공한다.

◇꽃새미 마을 가는 길=신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IC에서 내려 24번 국도를 통해 밀양시에 도착, 무안면 방향 1080지방도로 접어들면 무안면소재지가 나온다. 꽃새미 마을은 무안면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다리에서 보이는 이정표를 따라 왼편으로 꺾어 들면 나온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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