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백수'와 대통령선거

청년실업률 20%, 뒷짐진 정부…후보들 일자리 공약도 숫자놀음

'일자리를 달라.'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백수'다. 이웃은 물론이고 사돈에 팔촌집까지 직업 없는 20대가 부지기수다. 이들이 동네 PC방과 구이집을 먹여 살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실업률은 7.6%로 전체 실업률의 두 배가 넘고, 구직 단념자·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자까지 포함한 체감 실업률은 19.5%나 됐다. 대졸자 10명 중 8, 9명은 비정규직이거나 공무원·공사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축 처진 어깨에 찡그린 얼굴을 한 젊은이들이 나라 곳곳에 넘쳐나고 있다.

본사 기획탐사팀이 '일자리를 만들자'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만난 김관용 경북지사는 이런 말을 했다. "도민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우리 아이 취직 좀 시켜달라.'는 것이다. 힘들게 공부시켜 놓았는데 빈둥빈둥 놀고 있는 자식들을 보고 있으면 오장육부가 터진다는 이가 한둘 아니다." 젊은이를 좌절케 하고 절망케 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사회는 단단히 썩고 병들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임기를 4개월여 남겨놓은 노무현 정부는 그렇다 하더라도 혹 대선 후보들에게 기대를 걸 수 있지 않을까. 대선 후보들의 일자리 관련 공약을 찾아보니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대개 모호하고 추상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마치 '숫자 놀음'을 보는 듯하다.

향후 5년간 만들겠다는 일자리 수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300만 개,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정동영 후보 각각 250만 개, 이해찬 후보 200만 개였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300만 개,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 500만 개였다. 이 중 그나마 구체성(?)이 있는 것은 대규모 토목공사를 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후보일 것이다. 한반도 대운하에서 매년 40만 개 정도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인데 건설일용직 노동자가 상당수다. 혹자가 비판한 대로 대학 졸업자보다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나 걸맞은 일자리일지 모르겠다.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괜찮은 일자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들은 더 모호하다. '항공우주산업' '금융서비스업'을 앞세우거나 간병인, 보육교사 같은 정부예산이 들어가는 일자리 창출을 주장하고 있다. 일자리 전체 숫자만 뭉뚱그려 얘기할 뿐 세부적인 근거는 제대로 밝히지도 않는다.

경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경제가 1997년 이후 '고용없는 성장'을 계속해왔음을 안다. 생산자동화, 첨단산업 비중 확대, 저부가가치산업 해외이전 등이 원인이다. 경제학자들은 우리 경제만 그런게 아니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직장인이라면 10여 년 전에 비해 업무량이 늘고 다각화됐지만 인원은 오히려 줄었음을 체감하고 있다. 단순히 몇몇 산업을 육성하거나 성장률을 높인다고 해서 일자리가 대거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청사진이 뒷받침되지 않은 일자리 창출 구호는 헛공약에 불과하다.

최근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 '88만원 세대'의 저자(우석훈·박권일)는 이렇게 봤다. '(20대의 고통은) 급속한 압축성장을 겪으면서 사회적 불균형을 시정할 장치를 미처 마련하지 못한 한국 자본주의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문제다. 스위스처럼 지역사회 차원에서 청년실업을 해결하든, 일본처럼 비정규직에 그나마 안정성을 제공하든, 스웨덴처럼 '세대간 타협'을 통해 일자리를 마련하라.' 외국 사례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만큼이나 사회적 타협과 합의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아무쪼록 후보들이 본선에선 좀더 심도있고 적극적인 비전을 들고 국민 앞에 설 것을 권한다. 지금 공약으론 너무 빈약하다. 좀더 많은 고민과 공부가 요구된다. 청년실업은 그 무엇보다 가장 앞에 둬야 할 심각한 문제다.

박병선 기획탐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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