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 밖의 풍경은 아직 가을이 한창이다. 가을걷이가 끝나지 않은 황금색 들판, 찰랑거리듯 머리카락 늘어뜨린 은빛 갈대, 산허리 깊숙이 물든 단풍, 여행객은 한껏 들뜬다. 게다가 청도지역에 지천으로 널린 주황색 감은 사랑스런 아이들의 볼 같아 마냥 비비고 싶다.
이번 주 '어서오이소'팀은 안동 하회마을, 경산 갓바위, 청도 반시축제장과 운문사로 바삐 달렸다. 마침 열린 2007 청도반시축제를 알리듯 감나무 가지마다 주황색 전등을 밝힌 청도 반시는 여행객들에게 소중한 추억을 안겨줬다.
◆한 가지 소원을 빌고
여행 안내자는 '소원여행'이라고 그럴싸하게 이름 붙였다. 안동 하회마을 탐방과 경산 갓바위 산행까지 시간에 쫓긴다는 암시(?)였다. 하회마을과 갓바위 모두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이리라. 사실 하회마을도, 갓바위도 반나절 코스로는 부족한 곳 아닌가. 여하튼 첫날 여행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택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첫 코스 하회마을은 그 '명성'만큼이나 관광객을 우르르 몰고 다녔다. 이곳은 반촌의 기와집과 민가의 초가토담집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 인상적인 흙벽을 더듬어가다 양반가옥 북촌댁 옆 삼신당 신목(神木)에서 소원을 빌었다. 하회마을 정중앙에 위치, 아기를 점지해주고 출산과 성장을 도와준다는 수령 600여 년의 느티나무다. 둘러쳐 놓은 새끼 끈 끝에 소원문이 빈자리 없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은 이루어준다.'는 기도처 갓바위 부처(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에도 기도인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어떤 간절함일까. 입시철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짐작해 본다.
아이, 어른들이 동전을 꺼내 바위에 붙이자 신기하게도 떨어지지 않는다. 부모들이 갓바위를 보며 장래 희망을 빌라고 채근한다. 그냥 갈까 하던 사람도 앞 다투어 동전을 꺼내든다. 여행안내자는 "시간이 짧아 아쉽지만 '소원여행' 한 가지 소원은 비셨겠죠. 모두 잘 됐으면 좋겠네요."라고 가볍게 멘트를 날린다.
◆추억을 담고, 추억을 따다
저녁 무렵 청도 화양읍 송금리 와인터널로 향한다. 남성현 밑 방치된 기차터널이 감와인 저장고로 탈바꿈한 곳이다. 터널 중간지점부터 저장고이고, 입구는 전시공간과 카페로 활용된다. 터널 카페에서 연주회와 와인시음회를 갖고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1㎞ 터널 중간쯤에 위치한 철문을 열고 들어간다.
10만 개의 와인이 저장 중이다. 터널 맨 끝까지 채우면 100만 개의 와인을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터널 안은 15℃로 감와인 숙성에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아치형 천장에서 한두 방울 물방울이 떨어진다. 와인 병에 이름을 담아 다음을 기약하거나 추억을 새기는 재미도 있다.
이튿날 아침, 청도 매전면 덕산리 감 따기 체험농장. 5천여 그루의 감나무가 산을 차지하고 있다. '어서오이소'팀도 농장주인의 주의사항이 전달되자마자 장대를 들고 감을 딴다. 이왕이면 큰 것을 따려고 아등바등해본다. 발뒤꿈치를 들고 가지를 훑어보아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이들도 제 키 서너 배나 되는 장대를 들고 쟁탈전을 벌인다.
홍시 하나를 따서 입에 문다. '톡'하고 터지는 홍시의 보드라운 촉감,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있으리라. 다른 가족은 벌써 포장을 마치고 있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부랴부랴 감을 딴다. "가족 당 2상자, 저걸 어떻게 가져가나, 그래 이런 고민이야 행복한 고민이지."
◆반시축제 주인공으로
가을의 빛깔, 청도에서는 풍요롭고 은근한 주홍빛이다. 청도는 바로 지금 감 천지. 청도 땅 도로변이나 밭, 집집의 담장 위 어딜 보나 축축 늘어진 감나무 가지들이 주먹만한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이런 감의 천지 청도는 지난달 정부로부터 반시나라 특구로 지정받아 더욱 빛을 보게 됐다. 바야흐로 청도가 감의 천국으로 뜨고 있다.
농부들은 긴 장대로 감을 따다가도 넌지시 자식을 기다린다. 도시에 나간 자식들도 알아서 찾는 시절이 바로 요즘. 첫 무서리를 맞은 감이 제격임을 알기에 감 따기 작업 일손을 보태야 한다. 특히 자식들 덕택에 월요일은 물량이 쏟아져 공판장 위판가격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알고 보면 이 때문이다.
마침 청도반시축제(26~28일) 마지막 날에 끼어들었다. 볼거리, 먹을거리의 잔치. 도전! 반시를 쌓아라, 반시 정량, 당도 맞추기, 반시 길게 깎기, 감잎 추억 만들기 등 관람객이 주인공이 되는 축제다. 또 감 품종 전시장, 반시명품관, 청도대표 농산물 전시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여행팀은 감말랭이, 반건시 등 시중가격보다 10% 이상 저렴한 감 제품에 손을 내밀었다. "씨 있는 감은 청도 감이 아닙니다. 참외는 물에 뜨고 감은 가라앉아야 합니다." 아기자기한 반시 소개는 감 축제의 재미를 더한다.
감 고장에서의 금쪽 같은 시간은 금방 흘러가 버린다. 축제 주인공으로 참여한 여행팀은 못내 아쉬운 발길을 가을단풍이 물든 운문사로 돌려야 했다.
청도·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안동·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경산·김진만기자 factk@msnet.co.kr
♠ 경험자 Talk
▷김은정(41·서울 동작구)=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갓바위가 인상적이다. 전국적으로 인파가 몰려든다는 사실을 와보고서야 알게 됐다. 나에게는 어떤 간절함이 있을까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최승진(38·서울 은평구)=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이다. 청도의 무공해 감과 운문사가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와보고 싶다. 운문사 새벽예불 감흥이 남다르다는데 어떻게 해야 참배가 가능한지 궁금하다.
▷윤영하(32·서울 강남구)=1박 2일 코스로는 저렴한 비용의 여행이다. 와인터널에서의 연주회와 와인시음도 좋았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 주머니 Tip
첫날
하회마을 입장료 어른 2천 원, 단체 1천700원
저녁(불고기샤브샤브) 1만 1천 원
와인터널 입장료 3천 원
둘째 날
아침 고디탕 4천 원
반시 따기 체험 1인 5천 원
점심 추어탕 4천 원
운문사 입장료 어른 2천 원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