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김기택 作 '티셔츠 입은 여자'

티셔츠 입은 여자 / 김기택

탱탱한 피부처럼 살에 착 달라붙은 흰 셔츠를

힘차게 밀고 나온 브래지어 때문에

그녀는 가슴에 알 두 개를 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간혹 팔짱을 끼고 있으면

흰 팔을 가진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처럼 은은한 빛이

그녀의 가슴 주위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일으켰다는 고주몽이나

박혁거세의 후손들이 사는 이 나라에서는

복잡한 거리에서 대낮에 이런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드문 일도 아니다.

길을 가다 멈춘 남자들은 갑자기 동그래진 눈으로

집요하고 탐스럽게 그녀의 가슴을 만졌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그 눈빛들을 햇빛처럼 쬐었다.

타조알처럼 두껍고 단단한 껍질 속에서

겁 많고 부드러운 알들은 그녀의 숨소리를 엿들으며

마음껏 두근거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알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그녀의 허리가 너무 가늘어 보였지만

곧바로 넓은 엉덩이가 허리를 넉넉하게 떠받쳤다.

산적처럼 우람한 남자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아기를 안고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또 알이다. 등단 작품인 '꼽추'에서 혹을 난생설화로 연결한 시인이 아니던가. 남자에서 여자로, 등판에서 가슴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알 속에서 숨쉬는 말랑말랑한 생명을 끄집어내는 발상은 변함이 없다.

이런 무슨 허튼소리. 솔직히 내 관심은 오로지 가슴, 아니 유방. 사람에게 유방이 달려 있다는 사실, 게다가 두 개씩이나 달려있다는 사실이 기적이 아니고 뭔가. 경주 천마총의 고분군처럼 불룩한 유방이 대지가 아닌 사람의 몸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눈물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유가 끝나고 나면 사그라지는 동물들과는 달리 호모 사피엔스는 죽을 때까지 유방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살아있는 기적이기 때문일까, 남자들은 가던 길 멈추고 "갑자기 동그래진 눈으로/집요하고 탐스럽게 그녀의 가슴을 만"진다.

봄볕처럼 따스한 햇살 쏟아지는 십이월 창공에 불룩하게 달려 있는 저 '청천의 유방'(이장희), 땅에는 날선 창끝 같은 가슴을 세우고 티셔츠 입은 여자들이 보무당당하게 내 앞을 지나간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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