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속
김 /대/ 조
'싸르름― 싸르름― 싸르름― 싸아―.'
'싸르름― 싸르름― 싸르름― 싸아―.'
우렁찬 매미소리가 끈적대며 산바람을 타고 내려옵니다. 울창하게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간간이 별빛이 보이긴 해도 아직 깜깜한 새벽이에요. 눈을 뜨나 감으나 마찬가지인 짙은 어둠 속에서 누구를 부르는지 매미는 밤늦도록 노래를 멈추지 않습니다.
'사그락, 사그락, 사그락, 사그락…….'
무슨 소리일까요?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아도 산비탈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요. 자세히 들어보니 누군가가 무엇을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해요. 그런데 도무지 누가 그런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없어요. 느티나무 가지가 빙 둘러쳐진 그 아래에는 아무도 없는데 누가 내는 소리일까요?
'사그락, 사그락, 사그락, 사그락…….'
"아휴 힘들다. 이제 다 나왔나?"
어! 누군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매미굼벵이입니다. 땅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굼벵이 한 마리가 기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흙을 파내는 소리가 들렸나 봐요. 아직은 깜깜한 새벽이라 굼벵이는 밖으로 나와서도 자기가 정말 땅 위로 나왔는지 헷갈렸습니다. 굼실굼실 기어 나오는 모습이 제 이름만큼이나 느리게 흙을 헤쳐 나오고 있으니까요.
"아!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깥 공기구나! 음― 꽤 시원한데?"
굼벵이는 흙을 파내느라 지쳐서 가만히 쉬고 있었습니다. 간간이 부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거친 숨을 돌렸어요. 한낮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더운 여름이지만, 그래도 새벽에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시원합니다. 갑갑하게 살아온 굼벵이에게 한줄기 바람은 시린 얼음물처럼 마음을 뻥 뚫어주었습니다.
'앗! 저건. 사마귀잖아.'
잠시 땀을 식히는 사이에 동쪽 하늘이 어슴푸레 밝아집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풀숲에서 번득이는 빛이 보였어요. 굼벵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것이 사마귀의 눈빛이란 것을 알아챘습니다. 어슬렁어슬렁 먹잇감을 노리는 사마귀의 눈빛은 몹시 날카롭습니다. 뾰족한 앞발에 낚아 채이는 날에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직 사마귀는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어요. 굼벵이는 들키지 않으려고 나무 뒤로 몸을 숨겨 살그머니 둥치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굼실굼실~, 사그락사그락~ 곰지락곰지락~.'
"휴― 살았다. 큰일 날 뻔했네.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지?"
마침내 둥치를 타고 올라간 굼벵이는 그제야 숨을 내쉬었어요. 그리고 한참 동안 꼼짝 않고 편안히 쉬었습니다. 죽을 고비가 지나고 평화가 찾아오니 이것저것 떠오르는 생각이 많았어요. 지나온 일들이 마치 영화처럼 지나갑니다.
'벌써 7년이 지났구나. 사름이는 지금 어디 있을까? 그날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불어오는 바람 따라 옛 기억이 눈앞에 나타납니다.
"하하하. 이놈들 봐라. 오늘 모처럼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겠는데? 얘들아 공격해라!"
숲속 나무 아래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어요. 나뭇가지 속 알집을 비집고 막 태어난 매미 애벌레들이 줄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올 때였지요. 애벌레들은 정신없이 몸을 숨겨 땅속으로 내려가려 했어요. 하지만 결국 개미 무리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꼬물꼬물 어린 애벌레에게 개미 떼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괴물이었습니다.
"얘, 이쪽이야. 어서 와."
"어? 그래 고마워."
"어떡해? 친구들이 많이 잡혀갔어!"
"그러게. 그렇게 많던 친구들이 다 사라졌어."
매미 애벌레 두 마리가 개미 떼를 피해 나뭇잎 아래로 달아났어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난 후라서 둘은 정신이 없었어요. 한참이나 서로 말도 하지 않고 친구들이 잡혀간 곳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참! 우리 인사해야지? 너 때문에 살았어. 고마워. 난 사름이야."
"사름이? 난 맴맴이야. 이다음에 자라면 맴맴맴 크게 소리 지르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야."
"맴맴이? 재미있다. 벌써부터 목소리가 그렇게 씩씩한 걸 보면 틀림없이 넌 노래를 잘 할 거야. 나는 싸름싸름 우는 소리가 듣기 좋아서 사름이라고 지었어."
"사름아, 우리도 빨리 갈 길을 가자. 이렇게 있으면 또 위험할지 몰라."
"그래 또 개미들이 몰려올 것 같아서 무서워. 우리마저 잡히면 큰일이야. 빨리 땅속으로 들어가자."
"어디가 좋을까? 내가 나가서 적당한 곳을 찾아볼 테니까 너는 혹시 개미가 다시 오는지 망을 봐줘."
"그래. 고마워 맴맴아. 네가 있어서 그래도 덜 무서워."
"음, 망이나 잘 봐."
맴맴이는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습니다. 맴맴이는 느티나무 아래 보슬보슬한 흙이 마음에 들었어요. 너무 단단하지도 않고 너무 무르지도 않아 흙을 헤치고 들어가기 좋았어요.
"사름아, 이쪽으로 와. 여기가 좋을 것 같아."
개미가 다시 올까 두려워 마음을 졸이던 사름이는 맴맴이 쪽으로 꼬물꼬물 기어갔어요.
"참 폭신한 땅이구나. 맴맴아 여기 참 좋아. 이렇게 자꾸 신세를 지게 되네."
"신세는 무슨. 사름이 네가 잘 지켜줬기 때문에 찾을 수 있었는데 뭘. 이제 들어가자."
"잠깐만 맴맴아. 우리 지금 들어가면 오랫동안 못 만나겠지?"
"그래, 지금은 이렇게 작고 힘없지만, 다 자라서 다시 만나야지."
"맴맴아 우리 꼭 약속하자. 지금은 잠시 만나고 헤어지지만, 나중에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사름아, 나중에 우리 다시 만나면 좀 더 오랫동안 즐겁게 같이 지내. 꼭 다시 만나."
"오늘 네가 도와준 보답을 꼭 할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해. 그럼 우리 약속한 거다?"
"그래 약속!"
맴맴이와 사름이는 눈빛으로 약속했어요.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둘은 땅 속으로 꼬물꼬물 들어갔습니다.
"사름아! 벌써 7년이야. 7년이 지났는데 넌 어디 있니? 우리 만나기로 약속했잖아."
사름이 생각에 목이 메어 맴맴이는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7년 전 그날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움직이지도 않고 나무 둥치만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시나브로 맴맴이는 몸이 굳어지고 있었습니다.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굳어버린 맴맴이는 딱딱한 껍데기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어요.
"이제 시간이 됐나보네. 이 껍데기를 벗고 나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무서워. 땅 속에서 살 때는 땅 위가 그렇게 그리웠는데. 막상 땅 위로 나오니까 쉬운 게 하나도 없어. 아프지는 않을까? 살아서 하늘을 날 수 있을까?"
'토옥!'
그때, 맴맴이의 등이 터지면서 볼록하게 알몸이 약간 튀어나왔습니다. 맴맴이는 조금씩 천천히 힘을 줍니다.
"하아―."
파르스름한 머리가 쑥 빠져나왔습니다. 참았던 숨을 크게 내쉬는 순간 맴맴이는 몸속의 힘이 다 빠졌습니다. 그러고는 껍데기 속에서 참았던 숨을 크게 들이쉬었습니다. 처음 몇 번은 익숙하지 않은 바람에 시리도록 가슴이 따가웠습니다. 하지만 단단한 껍데기를 뚫고 들이마시는 바람은 온몸에 짜릿한 기운을 넣어주었습니다.
"이제 나머지 몸을 빼내야 할 텐데."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힘을 얻어 다시 마지막 힘을 주었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맴맴이의 몸통이 드러났습니다. 푸르스름한 날개가 막 솟아오르는 아침 해를 맞아 투명하게 빛납니다. 힘껏 다리를 모아 몸을 곧추세우더니 발끝에 걸린 마지막 허물을 벗었습니다.
"아!"
마침내 맴맴이는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힘이 빠져 자기가 벗어놓은 허물 옆에서 가만히 엎드렸습니다. 벗어놓은 허물이 딱딱하게 굳어 할머니의 손바닥처럼 되었습니다.
"이제 살 것 같다. 날개도 다 마르고. 어! 해가 뜨네? 너무 밝아. 너무 밝아서 앞이 보이지 않아."
온힘을 다해 허물을 벗고 나자 동이 터왔어요. 맴맴이의 날개가 활짝 펴지고 몸 색깔도 서서히 검게 변했습니다. 자르르 윤이 나는 검은 몸이 제법 의젓해 보입니다. 맴맴이는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했습니다.
"날았어! 아, 드디어 내가 날았어!"
하루가 지났습니다. 처음 날아본 하늘은 신기했습니다. 땅속에서 나와 밝은 빛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 기뻤어요. 땅속에서 보낸 7년의 어두운 허물을 말끔히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을 날았어요.
다음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밝은 세상이었지만 모든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친절하게 대해주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맴맴이에게는 소용없어요. 사름이가 없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화가 났어요.
사흘째에는 슬픔을 배웠습니다. 사름이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어요. 맴맴이는 하루 종일 시무룩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맛있던 나무 수액도 왠지 씁쓸합니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맴맴, 맴맴. 싸르름, 싸르름. 사름이를 잊어보려고 즐겁게 즐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닷새를 살고 나니 그것이 사랑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맴맴이는 지금껏 사름이를 사랑하며 살았던 것이에요.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사름이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어요.
엿새가 지나니 사름이가 미워졌습니다.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사름이가 몹시 미웠어요. 어디서 무얼 하고 있기에 나타나지 않는지 마음속에 미움이 가득했어요. 약속을 잊은 건 아닌지 걱정도 했어요.
이렛날이 다 지나갈 저녁 무렵. 간절히 사름이가 보고 싶었습니다. 꼭 사름이를 만나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맴맴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목청껏 노래를 불렀습니다.
'매앰― 매앰― 으잉― 으잉―.'
'매앰― 매앰― 으응― 으음―.'
"바보. 울기는 왜 우니?"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
훌쩍이고 있는 맴맴이 곁으로 매미 한 마리가 날아왔어요.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어릴 때나 지금이나 큰 목소리를 따라갈 수가 없겠어. 누가 맴맴이 아니랄까봐 그렇게 크게 우니?"
"너, 넌 누구니? 나를 어떻게 알아?"
"그렇게 크게 우는 매미를 쉽게 볼 수 있는 줄 아니? 네 목소리 들으니까 딱 알겠던데?"
"아니, 그럼 너는 7년 전에 약속했던……."
"그래. 7년 전에 우리 약속했잖아. 꼭 다시 만나기로."
"사름아!"
"맴맴아!"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다고."
"너야말로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은 줄 아니?"
둘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습니다. 눈시울에 눈물이 어렸습니다.
"어떻게 된 거야? 난 사름이 네가 우리 약속을 잊은 줄 알았어."
"네가 없었으면 그때 난 벌써 개미한테 잡혀갔을지 모르는데 어떻게 내가 그 약속을 잊겠니? 나는 오히려 네가 기억 못하는 줄 알았어."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좋았을 걸. 왜 이제야 만나게 됐을까?"
"지금이라도 만난 게 어디니? 나는 이것도 만족해. 못 만났으면 어쩔 뻔했어?"
"그래, 맴맴아 고마워.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정말 고마워."
"아니야. 잊지 않고 기억해 줘서 고마워."
맴맴이와 사름이는 그렇게 7년을 땅속에서, 그리고 다시 7일을 세상 밖에서 서로를 기다린 후에야 만나게 되었어요. 어두운 땅 속에서는 방향도 모른 채로 단지 벗어나야 한다는 믿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7년을 헤매고 다시 7일을 기다린 후에 맴맴이와 사름이는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밤늦도록 둘은 꼭 부둥켜안고 지나간 시간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튿날, 다시 맴맴이와 사름이가 있던 자리에 가 보았어요. 맴맴이와 사름이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꼭 붙어 있었습니다. 점점 힘이 빠지며 놓치지 않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맴맴이와 사름이는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면 오랫동안 함께 보내기로 했는데. 또 이렇게 만나자마자 다시 헤어지는구나.'
'이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나면 그때는 꼭 오랫동안 함께 있자. 약속해!'
'그래, 꼭 약속해!'
'싸르름― 싸르름― 싸르름― 싸아―.'
'싸르름― 싸르름― 싸르름― 싸아―.'
맴맴이와 사름이는 나무줄기 속에 다닥다닥 알을 낳고는 이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바람 따라 흩어져 고운 가루가 되어 옹글옹글 맺힌 아기알들을 덮어주었습니다.
저 나무 끝에 마른 가지가 보이나요? 푸른 나뭇잎 사이에 유독 바삭 마른 가지 말이에요.
쉿! 맴맴이와 사름이의 아기알들이 저 속에 있을지 몰라요. 지금도 맴맴이와 사름이의 약속은 끝나지 않았답니다.
▧당선소감-"내 손에서 태어난 녀석들이 큰 선물로"
초등학생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그 흔한 상장 한 번 받아보지 못했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글을 쓰려고 합니다. 참 우스운 일입니다. 글을 잘 쓰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 여긴 아이는 글을 잘 읽을 수는 있다는 생각에 주야장천 책을 쥐고 살았습니다. 남의 글을 읽다 보니 언제부턴가 나도 글을 한 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는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겨울바람이 불던 어느 날, 우체국에서 원고를 보내고 나오는 길에 한 쪽 손이 어찌나 허전하던지요. 나한테 있던 중요한 것이 떠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봉투를 쥐고 있던 손이 너무도 서늘해서 주머니 깊숙이 집어넣어 길을 걸었습니다. 내 손에서 태어난 녀석들이 떠나 이렇게 커다란 선물로 돌아오니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기약 없는 세월에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강력한 동기를 불어넣어주신 심사위원님과 매일신문사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항상 기쁘게 내 글의 독자가 되어주는 아내,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 예쁜 딸을 주신 장인 장모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고마운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꽃피는 봄에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꼭 제 글을 읽어 주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왔던 길이 헛되이 사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쓸고 닦아 튼튼한 길을 만들자고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 김대조 씨
◆약력 ▷1977년 대구 출생 ▷대구교대 국어교육과, 동대학원 졸업 ▷대구 장동초등학교 교사
▧심사평-동화는 미담이 아니다
많이 줄어들기는 했으나 올해에도 미담과 훈화를 동화로 잘못 알고 출품한 경우가 몇 편 보였다. 동화는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를 매개하는 순수 예술작품이다. 따라서 치열한 동심이 녹아있어야 하며 아름다운 형식미도 갖추어야 한다. 나비와 꽃이 등장하고 꿈속의 장면이 등장한다 하여 모두 동화는 아니다.
또한 동화는 어른들의 추억담이나 넋두리가 아니고 삶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기쁨을 주는 감동적인 문학 작품이다. 참된 동심 속으로 녹아들지 않고 겉에서 짐작으로 그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동화의 본질을 생각하며 응모작품을 몇 번이나 되읽은 끝에 '별이 된 집(유정탁)', '이쁜 꽃들이 퍼질 거예요(유호진)', '엄마 일기장(홍우주)', '우리들의 배고픈 시간(오영웅)', '빈병과 흰제비꽃(김기연)', '참바쁜씨와 로봇(조희양)', '수상한 이웃(이은애)', '형제봉의 늦가을(정춘희)', '약속(김대조)' 등을 가려들었다.
다시 여러 번 정독 끝에 마지막까지 남긴 작품은 '엄마의 일기장'과 '약속' 그리고 '빈병과 흰제비꽃'이었다. 세 작품 모두 형식미와 내용미를 두루 갖추고 있었고, 주제도 분명했다.
그런데 '빈병과 흰제비꽃'은 초반부에 문화유적 답사를 나올 만큼 지식층이 유적지에 음료수병을 함부로 버린다는 설정이 다소 어색하고, '엄마의 일기장'은 매우 재미있게 읽히나 비교적 단선 구조여서 좀더 지켜보기로 하였다.
이에 비해 '약속'은 오랜 시간을 기다린 매미애벌레의 사랑을 통해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호감이 갔다. 물론 애벌레의 생태에 대한 좀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묘사가 아쉬웠고 문장도 다소 투박하였으나, 전체적인 의도가 오늘날의 동화 독자들에게 인상깊게 다가갈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함께 보낸 '조각그림 맞추기', '환쟁이 할아버지'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 문학적 역량에 신뢰감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본 신춘문예에 4~5년 동안 꾸준히 두세 편의 작품을 보내온 그 열정으로 보아 앞으로 계속 동화작가로 정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어 기쁘게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대성을 기대한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작품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하며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심후섭(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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