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슨 굴렁쇠, 삐걱거리는 자전거가 되면 무엇이 나쁜가
가끔은 고장난 전축, 가다가 멎는 대물린 시계가 되면
무엇이 나쁜가
망가진 안락의자
이빨 부러진 머리빗이면
무엇이 나쁜가
우리 가진 고뇌가 자주 덧나는 상처라면 어떤가
시장에서 살 수 없는 행복을 책 속에서 살 수 있는가
위조되지 않는 삶, 수정할 수 없는 하루
더디게 오는 저녁을 가방 속에 챙겨 넣고 지퍼로
잠가 둘 수 있는가
들깨꽃 지는 한낮에도 지상의 발들은 바쁘고
단풍잎 같은 손의 정맥을 바라보면
나는 모자 하나를 걸어도 빠져내리는 약하게 박힌 못과 같다
수없는 오전이 가고 또 남은 오후를,
아직도 그려 넣으면 임금도 될 수 있고 당나귀도 될 수 있는
덜 그려 넣으면 어떤가, 우리
돌다가 멎은 그림이면 어떤가, 우리
돌다가 멎은 팽이, 촉 나간 손전등이면 어떤가
아무래도 사닥다리는 낮아 별들의 하늘에는 닿을 수 없다.
결혼 전에는 하늘의 별을 따 주겠다고 굳게 언약한 사람들, 혹시 사닥다리가 낮아서 딸 수 없는 건 아닌가. 사닥다리가 낮아서 시인들은 그걸 상상력으로 이어댄다. "그려 넣으면 임금이 될 수 있고 당나귀도 될 수 있는" 상상력. 상상력이 있어서 덜 그린 그림을 채워 넣고 감히 꿈꿀 수 없는 것을 꿈꾸게 만든다.
'모자 하나를 걸어도 빠져내리는 약하게 박힌 못'처럼 시인은 힘이 없지만 상상력이 있기에 이 세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자유자재 한 상상력을 펼치던 시인이 올해 정년을 맞이했다. "수없는 오전이 가고 또 남은 오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라건대 평생 꿈꿨던 '청산행'을 이루어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맘껏 부르는 '유리의 나날'을 만드시길.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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