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의 運] 저명인사에게 듣는다

사람은 도시의 피다. 그 피가 빠져나가는 도시가 있는가 하면, 모여드는 도시도 있다. 도시의 미래를 알 수 있는 척도인 그 피가 조금씩 대구에서 새어나가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빈혈로 쓰러질지 모른다. 비상이다. 대구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 미래를 듣기 위해 저명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

▶ 김지하 시인="르네상스가 올 것이다. 분명 대구와 관련이 있다"

요즘 '대구 외에는 안 될 것 같은, 무언가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대구는 결코 보수적 도시가 아니다. 정치적 오명일 뿐이다. 무정부주의 운동, 개혁적 소비 전통이 이어져 올 정도로 진보적 사상이 강한 도시였다. 르네상스는 도래할 것이다. 분명 대구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역사를 놓고 보건대 충청과 전라를 껴안고 보듬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철학과 담론, 교육, 전통사상이 숨쉬는 고장 대구는 최근 경제에만 주안점을 두지만 문화와 함께 두 바퀴 수레가 함께 굴러가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유럽, 미국과 달리 아시아는 독특한 '아시아 자본주의'가 꽃피고 있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그렇다. 상상력과 지혜, 예술이 경제와 어우러져 꽃을 피운다. 대구도 이런 잠재력과 가능성을 지녔다. 최근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 동학 교주였던 수운 최재우 선생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만들자는 움직임이 대구에서 일고 있다. 오히려 서울보다 낫다. 대구의 특징을 표현한 움직임이다. 교육도시의 장점도 최대한 살려야 한다.

▶ 이문열 작가="1970년대 쇠락이 시작된 뒤 오히려 TK 오명을 얻었다"

대구에서 8년이나 살았고, 떠나와서도 늘 생각하고 있지만 대구의 미래는 참 어려운 질문이다. 20년간 떠나있었고, 외국에서도 2년간 살다왔기 때문이다. 대구가 힘들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다만 정권이 바뀌었고 시민들의 기대감도 크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과거 수차례 정권을 배출했지만 결국 대구가 나아갈 길은 시민 스스로 찾아야 한다. 정부가, 정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보완적인 역할일 뿐이다. 주력산업이었던 섬유의 침체는 이미 1970년대에 예견됐다. 오히려 대구는 이때부터 TK 정권의 본산으로 불려왔다. 결국 지역이 활기를 찾느냐는 것과 지역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대구에 대해서는 '막연한 안타까움'이 있다. 지하철 참사 등으로 정신적인 황폐함을 겪었을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은 무기력증과는 다른 문제로 봐야 한다. 결국 성장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현 문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청와대를 바라보지 말라. 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구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지식은 KTX를 타고 온다'는 말이 들릴 만큼 서울과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른바 돈 되는 지식을 접할 기회가 늘었다. 지식은 힘이며 곧 돈이다. 경북과 분리되면서 공고한 내부의 성만 쌓던 대구가 변하고 있다. 설움도 당할 만큼 당했다. 60, 70년대 청와대 전화 한 통이면 해결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전두환 정권 때까지도 일부 그랬다. 이후 지역 출신 인사들이 고위직을 차지하긴 했지만 '그들만의 리그'였다. 오히려 대구를 상대로 '더 조져라'고 말할 정도였다. 전화는 불통됐고 정권 교체만을 바라며 설움의 15년이 흘렀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결코 예전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업가 출신 대통령을 보다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정치인 대통령처럼 선심성 행정을 펴지도 않고, '우연찮게'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마식 지원을 해줄 리도 없다. 공무원의 경쟁력이 빛을 발할 시기다. 필요하면 무릎도 꿇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적어도 앉을 자리도 없이 박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 이인중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세계를 무대로 뛰는 대구 기업이 나올 것이다"

지역에 대규모 프로젝트가 발주된다고 하지만 자칫 남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 5대 메이저 건설사의 경우, 앞으로 5년 이상 발주 물량을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수도권의 폭식이다.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균형발전 2단계, 즉 기업과 인재의 균등 배분은 국회 상정도 못한 채 끝났다. 이명박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을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정책이다. 물론 수도권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다만 지방 발전을 위한 강력한 인센티브도 있어야 한다. 지방 이전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현행 25%에서 15%로 줄여준다면 지역의 기업 유치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아울러 친기업적 시민 정서도 필요하다. 지역 업체들, 특히 기계와 금속, IT 업체들이 전국과 세계를 무대로 뛰고, 그 부가가치를 대구로 가져오도록 지원해야 한다. 과거 기업할 수 있는 기반이 없어서 못했다지만 이제 기반은 갖춰졌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 대구 저명인사들이 말하는 '대구의 運'

김범일 대구시장은 "올해 대운상승의 기회가 왔다"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대구는 정권을 내주고, 섬유산업이 초토화됐으며, 지하철 참사를 겪는 등 말 그대로 벼랑 끝까지 경험했지만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는 것. 김 시장은 "적어도 차별은 없으리라는 외부적 변화가 생겼고, 내부적으로 자신감을 회복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와 대구경북 지식경제자유구역 지정은 지역민의 저력을 보여준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육상대회 유치 결정 전날 몸바사에서 대구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시내 술집이 가득 찼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것이 바로 대구의 힘입니다. 육상대회 유치로 이미 본전은 뽑았습니다."

다만 김 시장은 "정권이 바뀌었다고 무조건 기대해선 안 된다"고 했다. 오히려 누구 탓도 할 수 없는 시기이며, 앞으로 정권 때문이라는 핑계도 못 댄다는 것. 아울러 최근까지 인수합병된 지역 기업 대부분이 외지인 손에 넘어갔는데, 앞으로는 대구 기업이 외지업체를 인수하는 극적 반전을 기대해 달라고 했다.

대구시장 재임 시절 '낙동강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던 조해녕 전 시장은 "앞으로 시운은 상승기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신천 시대를 지나 금호강 시대로 나아갔으며, 앞으로 낙동강 시대를 맞을 것이라고 보았다. 다만 이른바 'TK 정권'이 도움을 주었느냐는 물음에는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역의 인재들이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지역에 도움을 주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우동기 영남대 총장은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은 더 이상 우리 지역 대통령이 아니다'고 천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야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정부는 앞서 노무현 정부에 비해 지방의 위기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노무현 정부는 풍선의 한쪽, 즉 수도권을 눌러서 지방 발전을 도모하려는 정책을 큰 축으로 삼았지만 이번 정부는 풍선 양쪽을 함께 부풀리겠다는 정책을 쓸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화언 대구은행장은 "섬유과 경공업 중심으로 1960, 70년대 최대 호황을 누렸지만 이후 중공업 중심 정책으로 바뀌면서 내륙도시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쇠락을 시작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수차례 하늘길, 물길, 국가공단이라는 구체적 지역 발전방안을 제시한 만큼 기대가 크다"고 했다.

대구시 녹지과장으로 재직할 당시 대구수목원 조성을 맡았던 이정웅 달구벌얼찾기모임 회장은 "대구는 결코 수구적이거나 폐쇄적이지 않다"며 "오히려 조선시대 전란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귀화한 이들이 터를 잡은 곳"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당 조봉암 후보에게 72.3%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곳이며, 그런 개방적, 진보적 전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수년 전부터 대구의 운은 바닥을 쳤다고 주장해 왔던 박일환 대구시설관리공단 전무는 "지난 2003년 지하철참사로 하락의 저점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민의 기질적 특성상 주역을 맡지 못하면 불만이 커진다고 진단했다. 이제 주역으로 올라설 때가 왔고, 저력을 발휘할 때라고 강조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