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외수(李外秀·63). 혹자는 그를 두고 걸레스님 중광, 시인 천상병과 함께 우리 시대의 3대 기인(奇人)이라 말한다. 정돈되지 않은 긴 머리와 수염, 깡마른 체구, 술은 마셨다 하면 무박 3일, 담배는 하루 네갑 이상, 철창에 갇혀 글쓰기 등 상상을 뛰어넘는 온갖 기행들을 이유로 든다. 하지만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건 타고난 상상력과 아름다운 언어, 독특한 감성, 선(仙)과 도(道)의 탐구 등으로 채워진 그의 소설 덕분이다. 그의 책은 언제나 스테디셀러이고 출간됐다 하면 40만~50만부가 팔린다. 이외수는 글을 쓰는 게 '고통스럽다'고 했다. 그가 그토록 여윈 건 자신의 뼈를 깎고, 피를 자양분 삼아 작품을 길러내기 때문인 듯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22일 강원도 화천군 다목리 감성마을 그의 집에서 이뤄졌다. '새가 바라보는 쪽'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난 비포장길을 1.4㎞나 달린 후였다. 추적추적한 흙길을 두 번이나 오르내린 후에야 찾아들어간 집. 헤매는 취재진을 먼저 발견한 부인 전영자(56)씨가 손을 흔들며 맞이했다.
▶ 이외수가 보는 정치
-어린 시절에 대구와 인연이 있으시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대구 삼덕초등학교를 다녔어요. 1년 정도 다녔는데 교정에 정일권 장군이 주둔하고 있었어요. 천막 쳐놓고. 대구 하면 '뽀데또'라는 고구마 튀김, '달고나' 그런 냄새들이 아직 선명해요. 떠돌이 천성을 타고 나서요. 초등학교도 1년에 한군데씩 옮겨다녔어요. 여섯군데를 다녀서 초교 때는 거의 친구가 없습니다. 성적도 기복이 심한 편이었고 안정된 교육을 못받은 셈이죠."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국립현충원에 남긴 방명록의 맞춤법을 지적하셨고, 12월에는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의 각종 정책과 BBK 연루 의혹, 행적 등에 대해 비판하셨는데요.
"저는 한글을 사용해서 40여년 글을 써 온 사람이고, 제 입장에서는 쓰면 쓸수록 오묘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거든요.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장점을 얘기하고 있는 판인데, 한글날마저 공휴일에서 제외됐잖아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글날을 공휴일로 선포하고 그랬는데 공교롭게도 발견한 게 '이명박 맞춤법'이에요. 빨간펜으로 교정한 사진은 제가 한 게 아니고 네티즌이 한 것이고 저는 '캡처'만 했죠. 더구나 국사하고 국어를 영어로 가르치겠다는 말에, '한글을 모르는데 국어·국사를 영어로 가르치겠다고 그러느냐'는 글을 올렸는데, 이게 선거하고 맞물려서 당시 이 후보 지지자들의 심기를 굉장히 거스른 것 같아요."
-영어공교육이나 영어 몰입교육 등 인수위의 교육 정책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글에 관심과 투자를 먼저 하고 그 이후에 영어 교육에 주력한다면 불만이 될 수가 없겠죠. 한글을 등한시하면서 온 국민이 영어에 혈안이 돼서 민족의 숙원처럼 떠들썩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정치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인간 사회에 정치라는 것이 존립한다고 인식한 게 초교 6학년쯤이라면 그때부터 50여년 동안에 정치가 내 소망에 부응한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거든요. 다만 작가로서 지적해야 할 것은 지적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가지고 있죠. 특히 우리말에 관한 것은 제가 40여년 동안 붙들고 글밥을 먹고 살아온 입장이기 때문에 소홀히 할 수 없어요."
-이명박 대통령 임기인 향후 5년에 바라는 게 있다면.
"잘 하기를 바라죠. 그러나 국민 정서가 무시당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생깁니다. 좀 더 숙고가 필요하고 전문성을 두고 검토해야 할 여지가 있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 같은, 너무 강공 일변도를 보여주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없지 않다는 겁니다."
▶ 이외수가 보는 이외수
-'술은 마셨다 하면 무박삼일, 담배는 하루 80개비 이상, 머리 안 감고 세수 안 한다'는 소문 때문에 기인이라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술은 오래 전에 끊었고, 지난해 말부터 금연 중이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이외수씨의 아내인 전영자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담배까지 끊으면 이제 인생 종치는 거지 뭐. 술, 담배 끊고 여자까지 끊으면 뭐 낙이 있나?")
"글쟁이들이 괴벽이 참 많아요. 저는 글 쓰는 데 불편하고 방해가 되면 다 고칩니다. 예전엔 엎드려서 늘 글을 썼거든요. 그런데 허리가 고장이 나서 의사선생님이 자세를 바꾸는게 좋겠다고 해서 허리 펴고 글 쓰기 위해 컴퓨터를 배웠어요. 지금도 술을 입에 대기만 하면 무박 3일을 마십니다. 나이를 잊어버리니까 그냥 젊었을 때하고 똑같이 마셔요. 집에 술 떨어질 때까지 마시고…. 그런 후에는 방바닥을 며칠씩 '긁어야' 되니까 후유증이 점점 길어지고 해서 술은 과감하게 끊어버렸고. 담배는 천식 때문에…. 여기 화천 공기가 맑으니까 낫겠거니 하고 피웠는데 낫질 않더군요. 기침이 심해져서 잠을 못 잘 정도였어요. 기도가 부어서 협착증이 생겨 숨을 못 쉬게 되고. 그래서 느닷없이 끊어버렸어요. 준비도 없이. 그랬더니 그날부터 막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네갑씩 피우다가 끊어버리니까 몸이 당황을 해서 소화가 안 되는 거예요. 가스가 차고 설사를 하고…. 전체적으로 신체 리듬이 완전히 변해버렸어요. 그러고는 특히 뉴스 시간만 되면 담배가 땡기는데 야~ 대한민국에서는 담배가 끊기 힘들구나. 허헛."
-그럼 이제 '기인'이길 포기하신 건가요?
"네갑을 피우던 놈이 하루아침에 끊었으니 그게 기인이죠. 사실 30, 40대 때는 기행이 심했는데 50대가 되면서 마음이 스스로 둥글어져 있다고 생각하게 돼요. 차츰 제 의식, 행동의 자유분방함보다는 제 바깥의 것들과 조화하는 것이 아름답고 중요하다고 철학을 바꾸면서 많이 평범해졌죠."
▶ 이외수와 문학
-이제 블로그를 통해 누구나 글을 쓰고 대중 앞에 공개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반면 '문학의 위기'라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책이 참 안 팔린다고 하거든요.
"자업자득이죠. 문학 외적인 일, 단적으로 '떼짓기'는 문학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적 활동이라고 봅니다. 문학보다는 권위나 명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문예지를 만들고, 파벌을 결속하면서 독자들을 실망시킨 게 아닌가. 문학 발전은 뒷전이었던 사람들이 이런 결과를 초래해놓고는 오히려 그 사람들이 문학에 위기가 왔다고 하는데요. 자기들 패거리의 문학에만 위기가 온 겁니다. 우수한 젊은 작가들 너무 많습니다. 그런 작가들이 눈에 안 뜨인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말하는 문학은 빨리 죽어버리는 게 좋습니다. 지금 대구에도 이번에 그 메르데스? 베르메스인가? 대 베르메스?' 베르메쓰? 아… 영어로 된 건 이렇게 안 외워지네. 아무튼 그 대구 출신 작가인데 우광훈이라고. 아주 훌륭한 작가입니다. 굉장한 장인 정신을 갖고 있거든요. 상당히 색다른 시각에서 그림 모사하는 사람 얘기를 썼는데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베르메르 대 베르메르'예요." 문하생이 바로잡아줬다.) 아, 그래. '베르메르' 야, 한글로 제목 좀 하라 그래."
-소설 '들개'를 보면 쥐를 잡아 육포를 만드는 내용이 나옵니다. '꿈꾸는 식물'에서는 돋보기를 이용해 집에 불을 지르는 장면도 등장하고요. 이런 상황들이 실제 경험에서 나오는 건가요.
"그럼요. 다 경험에서 나오는 거죠. 해봤으니까. 쥐야 뭐 어릴 때부터 많이 잡아봤고…. 탁구공에 휘발유를 넣고 돋보기로 불을 붙이는 것도 강변에서 실험을 해본 거예요. 그 소설이 영화화됐는데 거의 제작비 안 들이고 급조하다시피 해서…. 제가 촬영 현장에 갔는데요. 벽에다 탁구공을 매달아 폭발하는 장면인데 그게 한개만 해도 위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래서 한개만 하고 나머진 가짜로 붙이라고 충고했는데 말을 안 들었어요. 감독이. 폭발이 너무 강해서 촬영장비가 다 날아가서 결국 못 찍었어요. 현실적 리얼리티가 부족하면 작가가 소설 안의 리얼리티를 자신있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직접 만들어서 실험해보고 전문가 찾아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전문 서적을 찾아보고…. 이게 시간을 많이 잡아먹죠."
-문학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작곡까지 실력을 보이시던데요. 각 분야마다 어떤 의미를 주는가요.
"산꼭대기 올라가면 다 보이잖아요 사방이. 하나만 터득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다 따라옵니다. 모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같은데요. 소리와 빛깔, 사유의 소산인 문학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차이가 있어요. 글은 끝까지 고통스러워요. 짜내야 되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때로는 표현이 경쾌하기도 심각하기도 해야 하는데 이런 조율이 필요하기 때문에 굉장히 지구력도 필요하고 언어도 갈고 닦아야 돼서 행위 자체가 굉장히 고통스러워요. 그림은 되든 안 되든 북북 그으면 긋는 대로 보이잖아요. 행위 자체는 굉장히 즐겁습니다. 음악은 글쓰기의 고통과 그림의 즐거움이 아주 나란히 병행합니다. 나는 셋 중에서 제일 사악한 게 글 같아요. 그걸 직업으로 선택했으니…. 그래도 후회는 안 합니다."
▶ 행복론
-부인 전영자씨의 내공이 보통이 넘는다고 들었습니다. 그 내공은 이외수 선생님과 살다보니 그렇게 된 건가요. 아니면 원래 그랬나요.
"아내 내공이 저보다 셉니다. 어느 정도 타고난 것도 있어야겠지만 극한 상황을 많이 겪었습니다. 여자로서 특히 견디기 힘든 경제적 불안을 쓰라릴 정도로 겪었고, 수십번씩 처가에서 쌀 훔쳐오고 김치 몰래 퍼오고…. 화천으로 온 후에도 월 평균 260명씩 손님이 다녀가는데 다 맞이해줘요. 수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도자(道者)'적인 철학이 생겨서 근심걱정 없이 짜증 한번 안내고 잘 견디죠. 마누라 자랑하면 팔푼이라 그러지만…. 손님이 방마다 차 있으니까 내복 갈아입을 곳이 없어요. 집주인인데도. 그래도 짜증 한번 안 내고 견디는 거 보면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자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저하고 죽이 좀 잘 맞죠. 마누라가 실권도 다 갖고 경제권도 다 일임해 놓고 난 글쓰기만 하면 되니까 되게 편해요."
-선생님은 행복하신가요?
"저는 굉장히 행복한 편이죠. 소크라테스가 말한 행복의 기준이 맞다면요. 소크라테스는 '가슴 안의 사랑이 가득해서 자신의 사랑을 남에게 줄 수도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그랬거든요. 저는 근심이 없고 작가로서 너무나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니까 행복한 사람이죠."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많은 걸 사랑해야 되는데…. 사랑이라는 게 묘해서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걸 아름다워 할수록 많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결국 아름다움을 보는 시야를 확대해야 합니다. 아름다움을 보는 시야는 '감성'과 연결됩니다. 감성은 '심안과 영안', 즉 마음의 눈과 영혼의 눈까지 뜨고 대상을 보는 겁니다. 자연이나 예술, 종교 등이 형이상학적 눈을 뜨게 만드는 거죠. 되도록 자연을 접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기회를 갖고, 자연에 버금가는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 작품을 자주 대해야죠. 종교 또한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사이비는 빼고. 그 가르침에 따르면서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시각을 확장하게 될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행복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장수하늘소' '칼' '벽오금학도' '황금비늘' 등 선생님의 많은 작품들은 선(仙)과 도(道)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인터뷰에 피곤한 기색을 보이던 이씨가 갑자기 상체를 세우며 눈을 반짝였다.)
"서양의 예술사조나 문예사조를 보면 걔네들은 전 사조의 철저한 반동에 의해서 새로운 사조가 태동하거든요. 특히 철학은 의식, 이성, 신, 혼돈 등 대상이 시시각각으로 바뀝니다. 그럼 아직도 철학의 대상을 못찾았다는 얘기 아닙니까. 지금 몇천년인데 아직도 철학의 대상을 못찾고 헤매고 있는 거. 우리 식으로 보면 '저 새끼들, 저거 헤매는 거야' 이렇게 밖에 안 돼. 그럼 동양은 어떤가 하면 수만년 동안 철학의 대상이 도예요. 도, 안 변해. 동양은 본성을 깨달아야 한다. 본성이라 하면 진리입니다. 동서양도 다 진리를 탐구하는 게 기본 목표인데. 서양놈들은 현상을 통해서 진리를 탐구해. 전부. 동양놈들은 본성을 통해서 현상을 해석하려고 그래. 정반대예요. 동양쪽은 '현상 탐구하지마. 그건 ×나게 변하는 거야. 우주의 다변화의 원칙에 의해서 그건 무한이야. 탐구하지마 그냥 즐겨' 이러거든. 현상가지고 진리를 알려고 하면 골만 지끈지끈 아프고 행복해질 수 없어요. 하나의 원리를 가지고 만가지 현상을 설명하는 게 동양의 도라면 딱 깨달음을 하나 얻으면 그냥 단조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고 아타(我他)가 없으면 이게 대단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제가 동양의 여러가지 서적을 섭렵하고 수련도 하면서 깨달은 게 첫째가 마음이다, 마음. 마음이 근본이 돼야 한다. 마음을 알면 다 아는 것이다. 대상을 나하고 똑같이 보는 게 마음이에요. '남 따로 나 따로'는 생각이야. 마음만 본보기로 하면 금방 도통지경에 들어가요. 대상과 나를 동일시 하는 것. 이렇게 되면 누구나 도인이 되는 겁니다. "
▶ 이외수가 보는 미래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20세기는 이성 중심의 문화입니다. 이성이라고 하는 것은 두뇌에 의존하는 사유체계입니다. 그런데 두뇌는 감동 못받습니다. 머리로 감동하는 사람은 없거든요. 감동을 못 받으면 이기주의자가 됩니다. 남이야 어떻든 나만 잘 되면 되는 것이고. 이성적이라고 하면 좋은 것 같은데 알고 보면 두뇌중심적인 인간형이고 몰인정한 인간일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돼야 하는데 감성은 가슴을 바탕으로 해서 느끼고 판단하는 것이죠. 사실 21세기의 문화는 감성이 주도하는 문화가 된다라고 전문가들도 얘기를 하고 있고. 또 그것이 사실 인류를 바르게 발전시킬 원동력이 될 겁니다. 인간을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어 갈 것이고. 최근 감성을 중심으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이 비관적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되려면 책이 좀 더 팔려야 되는데, 흐흐흐. 요즘 너무 책이 안 팔려요, 진짜. 감성이 녹이 슬면 슬수록 책이 잘 안 팔리잖습니까."
-지난 2005년 '장외인간'을 출간한 이후 아직 소설은 소식이 없으신데요.
"제 소설의 주인공은 지금까지 다 불행했거든요. 주인공들이 죄다 무겁고 불행한 삶을 살았는데 왜 행복한 사람은 내 소설의 주인공이 못 될까. 소설에서 보여줄 수 있는 행복의 기준은 어떤 걸까. 그 소설을 읽게 되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소설의 주인공하고 함께 행복해지는 이런 소설을 만들어 볼때도 되지 않았나. 나이가 육십이 넘었는데 온 인류의 근심을 혼자 짊어진 듯한 작중 인물로 심각해지는 것보다는 읽고 나면 행복해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고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달라지는 '기능성 소설'을 쓰려 합니다."
-앞으로 계획은?
"화천에 대한민국 최고의 감성발전소를 세우는 게 내 꿈입니다. 거기서 배출된 감성 관리사들이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 감성 천국을 만드는 거죠. 감성은 전염병하고 같습니다. 감성(感性)의 감은 느낄 감(感)입니다. 저는 알기보다 느끼려고 애쓰고 더 나아가 깨닫기 위해 애쓰라고 말합니다. 느끼고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저절로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거니까. 감성마을에 시설을 갖추고 훈련이나 교육도 하고 싶은데. 화천군이 전국에서 제일 가난한 군입니다. 돈이 없어요. 사실 혼자서 악전고투하고 몸으로 막 때우고 하는 거니까. 속도가 좀 늦죠."
집필실로 옮겨 대화가 이어졌다. 건물 전체가 집필실의 개념으로 설계됐다며 살기 너무 편하다고 했다. 이씨는 직접 작곡했다는 '개망초언덕'이라는 제목의 피아노곡을 컴퓨터 녹음으로 들려줬다.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음악인들로부터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말과 함께. '개념'이 살고 있는 안드로메다까지 보인다는 천체망원경과 고 천상병 시인이 늘 앉아있었다는 낮고 낡은 의자, 170cm는 너끈해 보이는 공작 익필(翼筆)은 격외선당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거실에는 어느새 인천에서 왔다는 손님들이 한자리를 차고 앉았다. 그와 동시대에 숨쉬며 한자리에 마주한다는 것. 시대가 내려준 또하나의 축복이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이외수는?
1946년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났다. 1972년 춘천교대를 다니다 중퇴했다. 같은해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고, 1975년 '세대(世代)'지에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신문사와 학원강사를 전전하며 몇 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1978년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을 내놓았다.
1979년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변신한 뒤 '장수하늘소'(1981)와 '들개'(1981), '칼'(1982)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특유의 반어적 문체로 환상적 이색공간을 그려내고, 원시 생명에 대한 동경과 순수를 향한 집념을 보여준다.
'벽오금학도'(1992)와 '황금비늘'(1997) 등 장편 2권을 쓸 때는 방문을 뜯어내고 교도소 철문을 달아 밖에서 걸어 잠근 후 끼니와 용변까지 안에서 해결하며 글을 쓴 걸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은 섬세한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구도의 세계를 그려내는 게 특징. 소설 '괴물'(2002), '장외인간'(2005) 등과 산문집으로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1998),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2007) 등을 냈다. 시집으로는 '풀꽃 술잔 나비'(1987),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2000) 등이 있다. 선의 세계를 표현한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 '외뿔'(2001) 등도 펴냈다.
장성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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