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에서 아들을 파리로 떠나보내는 다르타냥 부친의 훈시를 기억하는가.
'모름지기 출세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한순간이라도 두려움에 몸을 떠는 사람은 모처럼 찾아온 행운을 놓쳐버리고 말 것이다. 싸움을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모험을 찾아라. 네게는 무쇠 같은 다리와 강철 같은 주먹이 있다. 때를 가리지 말고 용감하게 싸워라.'
효심 지극한 다르타냥은 파리에 올라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좌충우돌식 결투를 벌인다. 소설의 배경이 된 16세기 프랑스에서 결투는 다반사였다. 지나치는 눈빛 하나에도 장갑을 벗어던지며 결투를 신청했다. 시쳇말로 "뭘 꼬나봐?" 이 한마디에 목숨을 걸고 죽을 듯이 싸웠고, 그리고 하나는 죽었다.
흔히 결투는 1대 1의 대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참관인 또는 증인이 참석한다. 이들은 팔짱을 낀 채 싸움을 구경하거나 부상자나 사망자를 수습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결투자의 뜻과 같이 하는 열혈 동반자다. 그들도 함께 칼을 뽑았다. 말이 결투지 실상은 작은 전투를 방불케 했다.
결투재판은 깔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긴 자는 무죄고, 패한 자는 유죄였다. 뒤끝도 없다. 원한이나 복수도 낳지 않았다.
이 승패는 신이 내린 결정이었다. 국왕도 단지 사면령을 내릴 뿐,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결투금지령이 반복(1599년, 1602년, 1613년, 1617년, 1623년 등)되었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사면장이 만들어졌다. 앙리 4세는 19년 동안 7천건의 사면장에 서명했다.
결투는 귀족이라는 최고의 증명서이자 낙인이었으며, 로망이었다. 술자리에서 서슴없이 웃통을 '까' 상처를 보여주며 귀족임을 행세했고, 결투운이 없었던 이들은 통탄하며 결투거리를 찾아다녔다.
결투는 절대군주와 공권력에 대항하는 귀족들의 자기방어이고, 자유의 극단적인 표현이었다. 이러한 귀족의 심리는 전쟁에 대한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이 책은 박준철 오흥식 최혜영 등 서양사학자 13인이 지었다. 결투를 통해 프랑스 절대군주와 귀족의 관계를 추적한 '결투를 사랑한 어느 귀족의 낭만블루스'를 비롯해 그리스 신화에서부터 최근 문화전쟁을 그린 '프랑스 히잡사건'까지 13가지 서양 역사의 주요 국면을 우리 시선에서 그리고 있다.
그것이 가지는 현재적 의의와 우리 현실과의 관련성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자식이 룸살롱에서 맞았다고 재벌총수인 아버지가 분연히 일어나 복수한 한국의 예를 프랑스 귀족의 결투와 비교해 "유치한 범법행위"라고 꼬집기도 한다.
연대기적으로 나열하는 종래의 서술 방식에서 벗어나 각 시대별로 선별된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는 형식을 채택했다. 특정 인물, 현상, 사건, 쟁점들을 소상히 분석하고 그것들이 당대 사회와 어떻게 소통하고 문화에 투영되는지 추적했다.
'그리스 신화는 미케네 그리스사다'는 고대 신화를 기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 얼마나 유럽 중심적인지를 따져보고, '박람회와 카우보이'편은 마치 서부활극쇼처럼 미국 제국을 탄생시키려는 욕망을 박람회에 얼마나 교묘하게 숨겨놓았는지 파헤쳤다.
이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왜 암살당했는가' '신학과 자연과학 사이' '면죄부 논쟁' '여성혁명가 구즈, 200년 만에 부활하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 독일은 이상 있다' '스탈린의 신데렐라' '세속종교의 탄생: 페론' '프랑스 히잡사건' 등 흥미로운 주제를 통해 서양문화사를 읽을 수 있도록 했다. 424쪽. 1만5천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단독] 예성강 방사능, 후쿠시마 '핵폐수' 초과하는 수치 검출... 허용기준치 이내 "문제 없다"
[르포] 안동 도촌리 '李대통령 생가터'…"밭에 팻말뿐, 품격은 아직"
李 대통령 "검찰개혁 반대 여론 별로 없어…자업자득"
이재명 정부, 한 달 동안 '한은 마통' 18조원 빌려썼다
김민석 국무총리 첫 일정 농민단체 면담…오후엔 현충원 참배·국회의장 예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