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갑제(趙甲濟·63) 월간조선 편집위원. 대한민국에 그만큼 세간의 평가가 극단으로 엇갈리는 이도 드물다. 보수주의의 이론가로 통하지만 시대에 뒤처진 수구라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영향력 있는 논객이지만 그가 내놓는 훈수는 늘 격한 찬반 논쟁을 일으킨다. 인터뷰는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인근 사무빌딩 17층 조갑제닷컴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시종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답변을 이어갔다. 강조하고 싶은 말을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다.
◆난 사실을 말할 뿐
-대표적인 우익 논객이자 보수층의 이론가 역할을 해오셨는데요. '수구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만.
"내가 '보수주의'라는 건 바깥에서 붙인 이름이고…. 나는 기자 출신이니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사실 중심으로 이야기를 하거든.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거고 좌우를 넘어서는 거 아니에요? 어떤 '론(論)'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논리를 전개하니까 남녀노소 다 수긍을 한다고 봅니다."
-집안 분위기는 어떤가요? 가부장적이신가요? 정치적 견해 차이로 언쟁을 벌이는 일은 없나요?
"아내가 기자 출신이고 경향신문 조사부장 그만둔 게…, 한 10년 됐구나. 그래서 직업에 대해 이해를 많이 해주는 편이지. 딸이 둘 있고, 외손녀와 외손자가 하나씩 있어요. 자녀들에 대해서 나는 방목입니다. '자유방임주의.' 내가 남한테 간섭받기 싫어하듯이 남한테 간섭하는 거 되게 싫어해요. 뭐 거의 생각이 비슷하니까. 별로 언쟁하는 일은 없는데…. 내가 사실을 앞장세우니까 대화에서 싸울 일이 없죠. 사실이냐 아니냐는 구분하기가 간단하잖아요. 누가 옳다 그르다 이건 굉장히 어려워요."
-그동안 일관되게 북한에 대한 비판을 해오셨는데 북한을 방문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오지 말라고 하던가요?
"간다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북한에 안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북한은 본질을 알면 이해하기가 굉장히 쉬운 데거든. 북한의 본질은 마적단이지. 김일성·김정일 집단이 북한이라는 마을을 약탈해서 주민들 굶겨 죽이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들끼리 잘먹고 잘사는 집단. 종교하고 정치가 일체화된 '신정(神政)체제'. 그 정도만 알면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고 개혁·개방을 안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 북한을 국가로 간주하고 분석을 하면 반드시 오류를 범합니다. 김정일이 없어지고 북한 체제가 바뀌면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조갑제와 한국의 보수주의·민주주의
-한국의 보수주의를 정의하면?
"한국의 보수주의는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는 세력이에요. 헌법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 자유통일입니다. 이게 보수주의의 기본 이념이에요. 한국의 보수주의는 누가 만들었느냐.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 근대화 박정희 대통령, 그 다음에 민주화·산업화한 사람, 이런 사람들의 공동 작품이거든. 그런데 김대중 정부부터 보수가 아닌 정부가 들어섰죠. 김대중·노무현 두 대통령은 헌법에 어긋나게 북한을 국가로 보고 김정일에 대해 아주 굴욕적인 태도를 보였어요. 좌파는 친북좌파와 반북좌파 두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부 친북좌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고 헌법 체계 안에서 허용되기 매우 어려운 민노당 같은 집단이 국회에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정리할 거냐 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 보수세력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는 형편에 따라 변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요. 자칫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로 비쳐질 수 있지 않을까요?
"민주주의는 여러 형태가 있는데 196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받아들인 민주주의는 1960년대 대한민국에 맞는 겁니다. 박정희란 사람의 위대성은 민주주의를 우리의 필요에 따라서 변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점입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있어요. 민주주의를 변형시켜도 3가지를 전제로 해야 됩니다. 선거의 자유, 언론의 자유, 사유재산의 자유. 이승만부터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세가지 자유가 본질적으로 훼손된 게 아니라고. 다만 규제를 받았어요. 나는 한국 현대사에서 진정한 독재자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이명박 정부에 말한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영어몰입교육이나 정부조직 개편, 숭례문 국민성금 모금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셨는데요.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보십니까?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라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의 이념이 뭐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헌법입니다. 이념이라는 게 모든 정치의 기반 아닙니까. 정치적 가치관과 삶의 양식을 결정하는 게 이념이고, 그 기본은 안 보입니다. 결국 '안보'에는 관심없이 경제만 잘하면 된다는 거 아닙니까. 안보와 법치를 무시하고 경제만 발전시킨다는 건 절!대! 불가능하지. 만약에 물이 경제라면 독은 안보, 뚜껑은 법치라고. 독에 금이 갔는데 아무리 물을 채우면 뭐합니까. 법치 안보만 딱 잡아놓으면 경제는 저절로 잘 돼요. 안보와 법치는 정부가 해야 됩니다. 민간이 할 수가 없어요. '경제 제일주의'라는 말은 기업인이 하는 거지 대통령은 그런 말을 쓰면 안 돼요. 안보제일주의라고 해야지. 실용주의라는 게 다 유행따라 하는 말이에요. '패션추종형' 정치 용어죠."
-한나라당을 보수세력의 대표로 인정하셨는데 한나라당에서는 조 위원님을 '극우'라며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그동안 밖에서 열심히 싸운 애국세력(노무현 정부 당시 잇달아 정부 규탄 집회를 열었던 우익 세력)을 극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건 그 사람들 머릿속에 좌경적 생각이 들어왔다는 거죠. 극우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체제를 지키려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게 좌익이 만들어낸 거에요. 좌익이 보수세력을 욕하려고 만들어낸 용어를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되죠. 한국에는 보수층은 있는데 진정한 보수정당은 아직 없는 것 같아."
-4월 9일 총선이 어떻게 전개되리라 보십니까.
"한나라당이 과반을 얻고 민노당이 참패하겠지. 민노당의 참패는 의미가 있죠. 극좌세력을 몰아내는 거니까. 헌법에 맞지 않는 정강 정책을 가진 위헌적 정당을 국민들이 심판하게 되는 거니까 의미가 있지."
◆대구경북은 배타성을 버려야
-대구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한나라당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너무 보수적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만.
"대구가 역사적으로 신라하고 연결이 되는데…. 신라가 삼국통일을 하면서 신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됐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대구와 근교권에 있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애국심을 갖게 됐죠. 대구 사람들이 말은 안 해도 애국심을 깔고 행동합니다. 가장 큰 장점이죠. 또 6·25전쟁 때 낙동강 전선에서 밀릴 때 주로 대구·경북지방에서 학도병·소년병이 참전했어요. 소년병이면 나이가 14~17세되는데 전사자가 2천500명 나왔죠. 세계에서 이런 나라가 드물어요. 또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대통령까지 4명의 대통령을 배출하니까 주인의식이 강한 거 같아. 다만 주인의식이, 지역주의가 너무 강하면 배타적이 된다고. 애국심을 발전시키고 배타성은 줄이고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지역 출신 대통령에 거는 지역민들의 기대가 큽니다. 기대한 만큼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요.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모든 국민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하지만 대통령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버려야 해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 국가 전체로 보면 많지가 않다고. 5% 정도밖에 안 된다고 봅니다. 나머지는 민간에서 알아서 하는 거죠. 그래서 자기가 책임져야 할 일을 대통령한테 해결해 달라고 하면 안 돼요. 대통령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접어야 합니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한국 사람들의 잘못된 생각이나 미신을 타파할 겁니다. 신라가 외세를 빌려서 조국통일 했으니까 민족 반역이라는 미신, 한자가 외국어니까 없애야 된다는 미신, 이승만은 독재자라는 미신, 김일성이 민족주의자라는 미신, 좌파가 진보라는 미신, 보수는 수구세력이라는 미신, 미국은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미신 등등."
인터뷰 후 조 위원은 사회부 기자 시절 썼던 '나도 죄인이다'라는 기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꼽았다. 1970년대 중반 부산 국제신보에서 사회부 기자를 하던 당시 썼던 것. 절도범 특별 단속기간에 억울하게 잡혀 온 오징어잡이배 선원들의 뒷얘기와 그들의 오징어를 앞뒤 사정 모르고 형사들과 함께 구워먹은 얘기였다. 37년의 기자생활 동안 써내린 수많은 기사 중 그는 왜 하필 그것을 꼽았을까.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조갑제는 누구?
1945년 일본 사이타마 현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부산수산대를 중퇴하고 1971년 부산 국제신보(국제신문 전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 하에 두차례 강제해직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 1981년 상경, 월간 '마당'을 거쳐 1983년 월간조선에 평기자로 입사했다. 2001년 월간조선 편집장과 대표이사를 맡았고 2005년 대표이사에서 물러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9년에는 정치평론 사이트 '조갑제닷컴'을 개설했다. 저서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박정희' '조갑제의 일류국가 기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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