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1950년대 자유당 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벌여왔던 민주당은 4·19시민혁명으로 집권기회를 갖게 됐다.

1960년 6월 국회에서 내각제 개헌에 이어 7월 29일 민의원과 참의원의원을 뽑는 제5대 총선거에 앞서 당내 양대파벌인 新派(신파)와 舊派(구파)는 정권장악을 위해 후보공천부터 경쟁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112명은 저마다 '신파공천' '구파후보'라며 '파벌' 이름으로 출마했고 양파는 은밀하게 자금까지 지원했다. 민주당은 이들을 제명했지만 상당수가 공천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개표 결과 민의원의원의 경우 총 233명 가운데 민주당은 175명을 당선시키는 압승을 했다. 또 무소속 당선자 49명 중에는 낙천했던 파벌후보가 적지 않게 포함된 것이다.

선거가 끝나자 낙천과 파벌후보들 중에서 당선인사들의 復黨(복당)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구파는 4·19혁명 정신의 구현과 함께 물가안정, 경제재건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전원 복당시켜야 한다고 한 반면, 신파는 선거운동 중 각종 害黨(해당) 행위를 했는지를 시간을 두고 검토한 후 고려해야 한다고 맞섰다.

실제는 앞으로 총리인준투표에서의 유-불리를 생각한 것이다. 구파로서는 그들이 援軍(원군)이었고 신파는 당선자 중에서 저쪽이 더 많아 천천히 복귀시켜야 한다고 계산한 것이다.

그 후 치열한 득표전 끝에 명목상의 대통령은 구파(윤보선)가, 실권총리는 신파(장면)가 차지했다. 신파가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이다.

다음 양파는 내각구성을 놓고 맞섰다. 어렵게 각료 수를 신-구파 각 5명, 무소속 2명으로 합의했으나 장면 총리는 먼저 구파가 교섭단체 구성과 分黨(분당) 추진 백지화 약속을 하라고 요구해 무산됐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60~70달러의 빈곤상태에서 거리에서는 매일 '쌀값을 내려라' '일자리를 달라' '임금을 올려라' 는 등의 구호를 외치는 데모대가 넘쳤음에도 신-구파는 당권과 정권을 둘러싼 세력투쟁에 더 열을 올리다시피했다.

이로 인해 장면정권은 2개월꼴로 개각을 해야 했고 구파는 끝내 신민당이란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이 두 조각난 것이다. 결국 4·19 덕분으로 집권한 민주당은 들끓는 민심과 국정의 표류에 아랑곳없이 양파가 공천-복당-총리인준-내각구성을 놓고 격렬하게 대립하다가 5·16 쿠데타를 맞아 몰락했다.

양파가 이해, 양보, 아량, 포용이 없는 고집으로 대치하다가 군부에게 쿠데타의 빌미를 준 셈이다. 훗날 양파의 원로, 중진들이 양보와 포용을 후회했을 때는 이미 역사의 기차는 떠난 뒤였다.

주요 정당들의 공천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8대 총선거가 끝났다. 비록 우리의 역대 총선사상 46%라는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지만 국민들은 절묘하고 심상치 않은 새로운 정치판을 그려냈다.

국민의 선택에는 의미있는 여러 가지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음을 시사하듯 이번 총선은 다양한 특징을 드러냈다.

총선 결과 한나라당은 국회 정원 299명의 과반을 약간 상회한 153석으로, 통합민주당은 3분의 1에 못 미치는 81석으로 각각 勝敗(승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것은 압승과 대패가 아니라 '기본적인 승리와 패배' '고뇌해야 할 승리와 패배'를 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겨우 3석이 넘는 원내과반은 참으로 '불안한 과반'이다. 새 정부의 선결과제는 경제 살리기, 일자리 창출과 민생안정이다. 각종 규제완화, 투자촉진, 중소기업지원, 경기부양과 내수 확대, 재정안정, 감세, 공공개혁 등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이런 과제들을 국회에서 원만히 추진하기 위해서는 원내 의석이 모든 상임위를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165~170명 선이 되어야 한다. 153석으로는 새 정부를 견제하려는 여러 세력들의 공세로 한나라당은 무척이나 힘들 게 분명하다.

따라서 공천-낙천-선거운동 과정에서 당 안팎 사이에 쌓인 감정 등으로 껄끄럽겠지만 우선 무소속 당선자 중 친한나라당계와 낙천 인사들을 귀환시키는 문제가 시급하다. 모든 것을 잊고 툭툭 털어버리고 복당조치해야 한다. 서로가 한발씩 물러서서 화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혹시나 7월 전당대회와 관련, 유-불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법적·도덕적으로 하자가 없는 한 복당조치는 빠를수록 좋다. 일본의 자민당은 총선이 끝날 때마다 의석 수에 관계없이 자연스럽게 무소속을 영입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야당과도 자주 대화하고 국민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처럼 '실패한 집권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강하고 책임있는 여당이 되려면, 당-政(정)-靑(청) 대화에 앞서 집안의 정리, 화합, 안정부터 추구해야 한다.

이명박정부의 성패는 1차적으로 집권당의 화합, 그리고 당-정 간의 민의를 바탕으로 한 비판과 협력관계에 달려 있다.

역사는 언제나 귀중한 교훈을 가르쳐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성춘 언론인·전 고려대 석좌교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