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財閥 총수의 퇴진 이후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이 엊그제 '깜짝쇼'를 했다. 그 영예로운 자리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설마 했던 국민은 이 회장의 强手(강수)에 놀랐다. 그리고 '유익한 일'에 쓰겠다며 내놓은 금액에 또 한번 놀랐다. 차명계좌 관련 금액이 4조5천억 원이라고 하니 국민 1인당 10만원 꼴이다. 재벌의 威勢(위세)에 어리둥절해진 국민이 되레 시험대에 올라앉은 기분이다.

경제적으로 보면 기업은 소비와 맞물려 돌아가는 生産(생산) 주체다. 따라서 기업은 소비자와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빈곤 탈출을 위해 산업화에 몰두하던 시대, 기업은 늘 '갑'의 입장에서 물건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경제 성장을 주도해왔다. 그것도 잠시, 민주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소비자 주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자 생산주체와 소비주체가 서로 힘 겨루기에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기업은 사회 생태계의 바로미터 역할을 한다. 언젠가 이 회장이 베이징에서 "우리나라 정치는 4류, 관료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 권력층의 노여움을 사 한동안 입국하지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국민은 알고 있었다. '속 시원한 발언'이라고.

이렇게 기업은 또 사회 혁신을 주도하기도 한다. 기업은 다른 조직과 달리 환경변화에 민감하다. 의사결정이 신속하다. 그리고 창조적 소수자(creative minority)들이 이익을 내기 위해 우글거리고 있는 곳이어서 항상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충만해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권력층과 문제가 없으면 그럭저럭 넘어갔다. 지금은 그 대척점에 있는 소비자와 맞물리지 못하면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번 사태도 삼성 그룹이 자발적으로 쇄신 방안을 내놓은 것은 아니다. 외부의 힘을 의식한 '고육지책'이다.

어쨌든 삼성은 국민을 향해 승부수를 던졌으니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제 삼성은 '기업문화 재창조'라는 또 하나의 과업을 안게 됐다. 먼저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는 것이 좋다는 교과서적인 원칙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The King reigns, but he does not rule)'는 격언은 경제계에도 유효하다.

지금 한국은 2만 달러 시대를 넘어 '성숙한 자본주의'로 치닫고 있다. 그 능선의 한가운데에 삼성이 있다. 한때 反(반)기업 정서가 팽배하던 시절,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기업은 매도당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업을 옥죄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毒(독)이 되는지도 경험했다. 기업도 이익만을 추구하는 생산주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한국은 아주 특별하게 위험한 사회'라고 했다. 위험 사회는 경제 수준과 무관하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은 담보 없이 빈곤층에 돈을 빌려준다. 지금까지 72만 명에게 돈을 빌려줘 그 중 절반이 빈곤선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담보가 없는데도 원금 상환율은 99%였다.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빈민들이지만 사회적 신뢰는 선진국을 능가하고 있다. 이런 사회는 위험 요인이 거의 없다. 이런 신뢰사회 구축에 그라민 은행이라는 기업이 앞장선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로 알려진 아담 스미스도 경제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저서 '도덕감정론'에서 "아무리 이기적인 사람이라도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이 공감하는지 여부를 중시한다"고 강조했다. 즉 자본주의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삶을 인간답게 향상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덕적 엘리트와 함께 사회적 기업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기업은 '절대 성장'의 시대를 넘어 '조화와 감동'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그 변환점에 초 일류기업 삼성 그룹이 서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에게는 행운인지도 모른다. 물러나는 재벌 총수, 권좌에서 내려온 뒤 그의 행보가 더욱 국민의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yzoot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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