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가족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면 한마디로 선뜻 정의 내리기가 수월치는 않다. 가족은 '부부, 부모, 자녀, 형제 등 혈연에 의해 맺어지고 생활을 함께하는 공동체 또는 그 성원'이라고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개념이어서 새삼스런 정의가 무색할 뿐이다. 언제나 우리 주변에 머무르는 공기처럼 늘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자연화된 영역으로 가족은 관용과 사랑으로 연대하는 요람이요, 안식처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일찍이 영국의 사회비평가인 다이애너 기틴스(Diana Gittins)는 자신의 저서 '가족은 없다'에서 전형적인 의미의 '가족'이란 지배 집단이 부여한 이데올로기적 굴레이며, 오늘날 그 굴레가 해체되어 가는 현상에 대한 우려는 허위의식에 기반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문화와 예술작품의 단골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때론 진부하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가족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에 있어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소중한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매일 저녁 습관처럼 같은 시간이면 TV앞에 앉곤 했다.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던 일일 드라마로 인해서다. 드라마의 극적인 재미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였지만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 사회가 집착하는 혈연 위주의 '가족'에 대한 의미를 재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재혼가정의 이야기로, 옛 연인이었던 두 남녀가 각자 사별하고 재회해 결혼에 이르는 내용을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의 결혼으로 부잣집에 새 가족으로 편입된 의붓아들이 그 집안의 아들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하는 기획의도에서 출발한 드라마였다. 가족은 성씨나 핏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마음과 정을 나눔으로써 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라는 것이 드라마 제작진의 변이다. 그러나 종영을 앞둔 시점에 의붓아들이 새 아버지의 친자라는 암시가 계속되더니 결국은 유전자 검사과정을 거치며 '의붓'의 꼬리표를 떼고 비로소 '성골(?)'로 신분상승을 하며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결국은 기획의도가 무색하게 또다시 '핏줄'에 과도한 의미부여로 천착하고 만 것이다. 공영방송에서조차 '혈연가족'만을 부각시키는 듯해 못내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이 같은 '순혈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피 못 나눈 대가'를 치르고 있지는 않을까.

"남과 남이 만나 부부가 되듯 정과 사랑이 있다면 그것이 가족이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단순히 혈연만 가지고 정의하는 것은 옳지 않은 듯하다"는 유명 연기자의 말은 순혈주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 대한 일침이다. 가정의 달 5월을 보내며, 가족의 구성요소는 DNA 조각이나 혈연이 아닌 넉넉하고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임을 믿고 싶다.

김향숙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대구지부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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