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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沼(소)처럼/박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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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가위눌리어 까닥도 않는 잠의 수렁

고여 썩어지기로 저 앞내 소처럼이라면

우리도 썩어 좋으리, 사랑하는 사람아!

한 개 낡은 단청의 빛, 넉넉한 숲을 짓고

달뜬 연을 떠올리어 신명에로 길을 여는

저 소는 물이 아닐레, 세월 속의 물 아닐레.

쉬 썩기 마련으로 우리는 놓였거니

설운 잠의 수렁을 온전히 깨어 이 한철을

우리도 썩어야 하리, 사랑하는 사람아!

'소'라면 물웅덩이지요. 늪일 수도 있고요. 흐르는 물이 할 수 없이 고여 썩으면 소가 됩니다.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사랑하는 사람을 불러 썩어 좋다고, 함께 썩자고 할 리가 있나요.

'쉬 썩기 마련으로 우리는 놓였거니', 이미 썩을 만큼은 사랑도 겨운 노릇이지요. 잠의 수렁은 곧 사랑의 맹목인 것. 자각 없는 사랑은 다만 그 맹목에 가위눌릴 뿐, 썩지를 못합니다. 온전히 깨어 한철은 썩어야 넉넉한 숲을 짓고, 달뜬 연을 떠올리어 신명 쪽으로도 더러 길을 열고 그러지요.

大巧若拙(대교약졸). 모처럼 우리말의 말맛을 느낍니다. 이제 다들 조바심치며 내닫는 마음의 여울을 붙들어 앉힐 일입니다. 고여 썩게 할 일입니다. 될 수만 있다면 낡은 초록에 단청도 좀 올리고, 먼 길을 떠도는 들오리 떼도 불러들이고 그럴 일입니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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