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6월 7일 충북 황간에서 의병대장 이인영 선생이 일본헌병에게 붙잡혔다. 당시 선생은 시영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북 상주 등지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다가 부친의 3년상이 끝나는 대로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부친의 묘를 성묘하는 것이 단서가 돼 붙잡히게 된것.
선생은 1868년 9월 23일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일찍이 학문이 높아 유학자로 명성을 쌓았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이 내려지자 의암 유인석, 운강 이강년 등과 함께 의병을 규합하여 일본군과 싸웠다.
1896년 의병해산령이 내리자 선생은 의병을 해산하고 경북 문경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선생은 서울을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는 한 국권회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 전국의 대규모 연합의병부대를 편성하여 서울로 진격 계획을 수립했다. 1907년 11월 전국 각 의병들이 경기도 양주로 집결할 것을 촉구, 이어 의병장들의 만장일치로 총대장이 됐다. 하지만 1차 서울공격의 실패 이후 부친의 사망 소식을 듣고 허위에게 군무를 맡기고 총대장을 사임, 문경으로 돌아간다. 1909년 9월 20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했다.
▶1920년 봉오동 전투 ▶1848년 화가 고갱 출생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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