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감독으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1위를 차지한 작품을 아는가.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Five Fingers of Death. 1972년)이다. 한국 개봉 제목은 '철인'이고, 홍콩에서는 '천하제일권'으로 개봉됐다. 한국 감독이 만들었지만 제작사는 홍콩의 쇼브러더스다.
정 감독은 1960년대 충무로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연 장본인이다. 1968년 쇼브러더스와 전속 계약을 맺고 홍콩으로 건너가 만든 첫 영화 '천면마녀'가 홍콩영화 사상 처음으로 유럽에 진출한 작품으로 기록됐다. 이어진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홍콩영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해 파란을 일으켰다.
22일 오후 11시 25분 EBS TV 한국영화특선에 방영되는 '철인'이 바로 이 작품이다. 다른 권격 영화들처럼 피비린내 나는 복수혈전이 전체 줄거리다. 나유를 비롯해 홍콩영화의 악역을 도맡아 한 라열이 출연한다.
스승의 딸을 사랑하는 주인공이 비운의 스승의 원한을 갚는다는 이야기다. 뜨거운 쇠 모래에 주먹을 단련시키는 특수철장비법을 전수받는 조지호는 무예계의 라이벌 맹삼부의 술수로 두 손을 부상당한다. 그러나 붕대를 감은 채 철장법을 훈련받아 무예시합에 나간다. 그러나 맹삼부의 습격을 받고 옛 사부인 송무양이 죽자 대회에서 승리한 후 맹가 일당을 찾아가 철장을 휘둘러 복수한다.
라이벌 문파의 흉계로 사부가 처절한 죽음을 맞고, 그의 딸을 위해서 복수를 하는 이야기는 '정무문'을 비롯한 권격 영화의 전형이다. 태어나면서 영웅이 있으랴. 이 영화는 주인공의 심성이 착하고 실력도 미천하지만, 남다른 인내심으로 이를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먹히는 이야기다.
영어제목인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이를 이겨낸 주인공의 이미지다. 각고의 노력 끝에 철장법을 완성한 주인공은 강철같이 단련된 손가락을 이용해 적을 공격한다.
손가락 끝에 기를 모을 때 손가락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마치 쇠를 달군 것처럼 강력해지는 것이다. 특수효과가 없던 당시 이 장면은 붉은 조명으로 처리했다.
희한하게 이 영화가 다시 각광을 받은 것은 할리우드의 귀재 쿠엔틴 타란티노 때문이다. 어릴 때 이 영화를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이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 베스트 10'에 꼽았다.
그리고 영화 '킬빌'의 복수극 기본 줄기를 이 영화에서 뽑아냈다. 특히 '킬빌'에서 사이렌 소리 나는 효과음을 긴장감 넘치는 장면에 그대로 차용했다.
1928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난 정창화 감독은 1953년부터 1977년까지 총 53편의 영화를 발표했다. 현재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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