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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 싸움, 경제적 고통…'老兵의 전쟁'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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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6·25 참전유공자회 사무실에서 만난 노병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 대구 6·25 참전유공자회 사무실에서 만난 노병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경기도 장단 산자락에서 벌어진 전투였어. 지뢰를 밟아 목이 떨어져 나간 이등중사를 업고 한 손엔 그의 총과 내 총을 움켜쥐었지. 200m를 내리 뛰었어. 총알이 땅에 박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지. 그때 내 나이가 열여덟이야. 허벅다리에 총알이 관통해 다리를 움켜쥐고 울부짖던 동료도 부축해야 했어. 의무병을 기다리며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는데….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저 참전유공자일 뿐이야."

◆뒤늦은 '국가유공자'

6·25전쟁 발발 58주년을 맞아 지난 23일 오후 대구 중구에 있는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대구지부'를 찾았다. 12명의 노병들은 작은 훈장 모양의 배지를 가슴에 달거나 '유공(有功)'을 상징하는 마크가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지난 3월 6·25전쟁 참전유공자를 국가유공자로 격상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개정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법은 오는 10월부터 적용된다. 개정된 법은 제4조 국가유공자 적용 대상 항목에 6·25전쟁 참전유공자를 새로 포함했다. 6·25 참전유공자 호칭이 국가유공자로 격상되는 것이다.

박판음(76·서구 비산동)씨는 "죽거나 다친 그들을 업고 안아 지킨 것은 우리야. 다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유공자가 아닌 참전유공자로 취급한 것은 정말 너무한 처사였다"고 말했다. 12명의 어르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포로수용소에서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았어." 김규환(80·중구 동인동) 할아버지가 말을 이어받았다. "1951년 강원도 원통에서 인민군에 포위돼 포로가 됐어. 옷 잘 입은 놈, 하사, 장교 모두 따로 분류됐어. 평양 강동수용소에서 신의주 철산수용소까지 2년 가까이 지냈지. 한겨울에 동료 대부분이 옆에서 죽어나갔어." 김 할아버지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여러번 인상을 일그러트렸고, 눈물을 닦아냈다.

◆남은 삶도 전쟁

어르신들의 분노는 뒤늦은 국가유공자 예우 때문은 아니었다. 국가유공자가 받는 보훈급여금(연금·보상금), 본인이나 자녀 취업, 교육 혜택, 주택 분양 등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이나 지원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개정법은 참전유공자들에게 '정신적 예우'와 '명예회복'만 줄 뿐이다.

모인 12명의 참전유공자 중 기초생활수급권 혜택을 받는 사람은 1명뿐이었다. 그 역시 불구자인 아들이 있어 가능했다. 12명 중 절반이 아내를 일찍 여의고 홀몸노인으로 지냈다. 참전 명예수당 8만원, 노인연금 8만원이 그들 수입의 전부다. 참전 명예수당은 6년 전에 비해 고작 3만원 올랐다.

대구보훈청에 따르면 대구에 거주하는 6·25 참전유공자는 지난달 기준으로 2만1천227명이다. 2000년 2만7천420명에서 6천여명이 세상을 등졌다. 생존자 대부분이 70, 80대 노인들이다. 당뇨, 고혈압, 심장질환, 전립선 비대, 관절염 등 병마와 싸우거나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소원은 단 두가지다. 유경술(79·남구 대명동)씨는 "이제 죽을 때 다 됐으니 보훈병원에서만 받는 60%의 할인혜택을 좀 늘여줬으면 좋겠다"며 "집 근처에 병원 한 곳을 지정해주면 교통비도 줄이고 얼마나 좋겠냐"고 했다. 또 하나는 시내버스도 국가유공자 혜택을 달라는 것이다.

6·25 참전유공자회 장태복 대구지부장은 "6·25전쟁은 점점 잊혀가고 있으며 우리가 죽으면 죽은 역사가 될 것"이라며 "정부가 법개정을 통해 우리의 명예회복을 해줬지만 보다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더욱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상현기자 ssa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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