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멍청하고 순진한 터키 철학자 집에 도둑이 들었다.
변변한 살림도 없는 집안이라 도둑이 몇 가지만 자루에 주워 담자 방안에는 옷가지 몇 벌밖에 남지 않았다. 잠결에 도둑이 살림 훔쳐 가는 걸 보고 있었던 철학자는 도둑이 나가자 남은 허드레 살림을 주섬주섬 자루에 주워 담은 뒤 도둑을 뒤따라 나섰다.
자기 집에 도착한 도둑이 등 뒤에서 자루를 메고 따라온 철학자를 보고 깜짝 놀라며 물었다.
"당신이 여기는 왜 왔소?" 그러자 멍청한 철학자가 대답했다.
"우리집이 여기로 이사 가는 줄 알았지."
돈 될 만한 것만 골라 빼내 가고 허접스런 살림은 있어봤자 빈집 꼴인데다 도둑맞았다는 개념조차 없으니 이사 가는 거나 매한가지 아니냐는 철학자의 풍자다.
어제 국가기록원이 청와대 통치 기록문 자료를 통째로 가져갔다며 봉하마을을 찾아갔다 빈손으로 돌아온 모양새를 보면서 터키 철학자의 도둑 얘기를 곱씹어 보게 된다.
법대로 따지면 국가기록물은 엄연히 국가(국가기록원) 소유다.
청와대 주장대로 '불법'으로 양해 없이 통째 빼내갔다면 빼내간 봉하마을 주인은 '도둑'이 되고 봉하마을에 설치된 기록물과 서버시스템은 장물이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 초기부터 정작 인수해야 할 핵심 국정자료 기록 하나 제대로 못 챙겼다.
긴박한 국정 인수시기에 몰입교육이니 유류비 감액 같은 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교회 코드 인사에나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 '도둑'이 들 수밖에 없다. 제대로 쓸 만한 집안 살림이 도둑맞은 걸 알고도 반년 가까이 "돌려달라"고 통사정만 했지 '법대로' 나라기밀을 되찾아올 배짱도 수완도 없었다.
차라리 도둑집으로 따라 이사 간다며 허를 찌른 철학자가 더 매력 있어 보인다.
그런 '無骨蟲(무골충)' 같은 MB정부 처신이 못 미더워 국가기록원보다 하루 앞서 '국민 의병단'이란 시민단체가 정부 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절도' 혐의로 검찰에 형사 고발했다.
노씨가 도둑인지 아닌지는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이 가려낼 일이니 일단 접어두자. 그저 국민들로서는 퇴임한 대통령이 왜 나라에 도움될 일거리 대신 소모적인 말썽거리나 만들어 팍팍해진 민심을 더 고달프게 하느냐는 건 따져 봐야 될 일이다.
200만 건이 넘는다는 국가기록물들을 뒤져가며 나라 걱정을 하겠다는 애국심 때문이었다면 두 가지만 물어보자.
국가기밀 기록들을 절차 생략해가며 서둘러 빼내 보고 싶을 만큼 그렇게 우국충정으로 나라 걱정이 급했다면 지난 집권 5년, 시쳇말로 '있을 때 좀 잘하시지'라는 의문이 든다.
또한 그토록 나라가 걱정됐다면 초기 촛불시위 이후 변질된 불순세력의 난동으로 아수라장이 됐을 때 왜 최소한 전직 대통령으로서 '준법' '나라경제' '평화적 시위' 같은 덕담 한마디라도 보태지 않았는가.
또 다른 질문은 무엇을 위해 도둑으로 고발당해 가면서까지 기록에 집착하는가라는 의문이다. 한때 자신을 배신했던 민주당 지도부를 만나고 옛 추종세력을 다시 그러모으면서 자신의 말대로 '진보의 씨앗을 뿌리고 싶은' 속셈인가. 행여 그런 야망을 품는다면 그것은 고향 땅에 '봉하공화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이라도 노무현 씨는 기록물이 양심에 비춰 장물이면 구차한 군말 없이 내놓으라.
그리고 MB, 불법'불법 입으로만 떠들어 대지 말고 오늘밤이라도 압수해서 뺏어오라. 못하겠으면 철학자처럼 알짜배기 국정자료 다 옮겨가 있는 봉하마을로 짐 싸서 이사를 하든지….
윗물이 원칙과 法治(법치)를 못 세우니 아랫물(폭도)들이 법을 깔아 뭉개고 관광객이 등 뒤에 총을 맞아도 報告(보고) 늦은 것만 투덜거리고 있게 되는 거다.
金 廷 吉 명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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