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才勝德

'자치통감'에 재주가 德(덕)보다 많아 패망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춘추전국시대 晉(진)의 대부 智瑤(지요)가 장본인이다. 재주는 많으나 교만하고 어질지 못한 인물을 경계하라는 뜻의 '才勝德(재승덕)'의 고사도 여기서 비롯됐다. 사마광은 이 고사에서 재주가 덕보다 많은 사람을 '소인'이라 일컫고 재주와 덕 모두 똑똑한 것으로만 여기고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면 결국 사람을 잃게 된다고 평론했다.

각계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국회에서 희한한 논리로 재주를 자랑한 모양이다. 강 장관의 퇴진을 촉구한 경제'경영학자 118인의 성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한 야당 의원이 묻자 "어려울 때 일을 더 잘해 경제를 살리라는 질책으로 안다"고 답했다고 한다. 단수가 높은 건지,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만 믿고 아예 철면피가 된 건지 모를 지경이다. 선량들은 폭소를 터뜨렸다고 하는데 장관 재주만 믿다 엉터리 정책 때문에 치명상을 입은 국민들로서는 정작 쓴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잘하라고 맡겨놨더니 거꾸로 가는 정책을 고집해 민생을 어렵게 만들고도 "정부가 고환율을 부추겼다는 건 오해다. 오히려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강변하는 장관이라면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대통령 지지율이 20%대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경질 못할 이유가 있다'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유로 계속 장관을 감싼다면 대통령 또한 재승덕의 덫에 빠질 수밖에 없다. 나라와 집안을 다스리려는 사람은 진실로 재주와 덕의 몫을 살필 줄 알아야 제대로 된 사람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나.

강 장관이 10년 거리로 차관-장관을 넘나드는 것은 분명 재주는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부하 차관을 밀어내고도 자리를 지키는 재주라면 더 할 말이 없다. 선비가 헤어져 사흘이 되면 곧바로 괄목상대할 정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덕과 안목이 날로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요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후사로 삼지 말라며 대부 智宣子(지선자)에게 고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輔(보)씨로 성을 바꾼 智果(지과)의 심정을 조금은 알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거만하여 인재를 놓친 조조나 주위 사람들의 고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지선자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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