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역만리 한국땅까지 사랑하는 딸을 보냈을까?'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은 베트남인들에겐 사치에 지나지 않는 걸까.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딸아이를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했다며 친정집 어머니들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들은 외국인과의 결혼을 꺼려하지 않는 이곳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딸을 멀리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죄인 아닌 죄인(?)이 됐다고 했다.
#1
지난 5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동쪽으로 3시간을 달려 도착한 하이퐁시 외곽의 작은 마을. 마을 주위를 논이 빙 둘러싸고 있어 논 안에 마을이 빠져 있는 듯 보였다. 논 사이의 물 웅덩이에는 오리와 물새들이 한가로이 놀고 있어 정겨웠다. 마치 20년 전 한국의 농촌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린 것 같았다.
좁은 동네 길을 따라 들어간 곳은 경남 통영으로 3년 전 시집간 부찌터넝(21)씨의 친정집. 집앞 가판대에 늘어놓은 음료수와 생필품은 한국의 70, 80년대 시골 구멍가게를 연상케 했다.
기자는 아버지 부찌터파(62)와 어머니 사우(61), 시집간 두 언니와 형부, 조카 4명, 그리고 넝의 남동생 부찌터즈엉(17)의 환대를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섰다. 빛바랜 배용준, 김희선, 최지우 등 낯익은 한류스타들의 사진이 벽면에 도배돼 있었다.
취재진은 한국에서 넝씨가 가족들에게 전해주라며 맡긴 선물보따리를 건네줬다. 동생에게는 필기도구, 머리가 하얘진 어머니에게 염색약 등이 들어있었다.
"딸에게 앞으로는 사진도, 한국 물건도 보내지 말라고 꼭 좀 얘기해 주세요. 돈 많이 쓰면 안 돼요." 어머니는 행여 시집간 딸이 친정을 너무 챙기다 시댁으로부터 미움을 사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딸아이에게 '꼭 전해 달라'며 딸이 평소 좋아했던 과일(리치), 밑반찬 등을 주섬주섬 챙겨줬다. "이거라도 보내 줘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 가난한 살림 탓에 마음껏 한번 먹여 주지도 못했으니까요."
#2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열대과일 '리치'의 주산지인 푸엉케 마을. 중국 국경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3년 전 충남 청양군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 레티와인(25)의 친정집이 있는 곳이다. 할머니(히·76), 아빠(무이·56), 엄마(보·57) 등 일가 친척 18명이 한동네에서 살고 있었다. 대가족이 모여사는 터라 명절에 가족이 함께 모일 때면 더욱 와인씨가 보고 싶다고 했다.
취재진이 한국에서 가져온 와인씨의 사진을 보여주자 온가족이 즐거워했다. 하지만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보고 금방 본 사진을 첫장부터 다시 꼼꼼히 살피는 이가 눈에 띄었다. 와인씨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연방 눈물을 훔친 탓에 어느새 손등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엄마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제일 마음에 걸려요. 딸아이는 미래가 없는 베트남의 생활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어요. 딸아이가 한국에 가서 살기를 원했으니까 한국에서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3
호찌민에서 북쪽으로 비포장 도로를 따라 4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베트남의 젖줄' 메콩강이 나온다. 이곳 강 하류에서 20여분간 배를 타고 들어간 곳은 작은 섬마을이었다. 2년 전 부산으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 김티베(23)씨가 자란 곳이다. 고향이 물가여서 부산을 택한 걸까? 티베씨는 부산에서 어선 그물을 만드는 배성완(37)씨를 남편으로 맞았다.
이곳에서 어머니 김티남(53)씨는 막노동을 하다 일을 그만둔 아버지를 대신해 죽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 딸아이에게 한국에 시집가면 잘 살 수 있고 가정 형편에 보탬이 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솔직히 속이 많이 상했어요. 딸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섭섭하지만 행복하게 살면 그뿐이죠."
어머니는 딸이 사는 부산의 지도가 새겨진 손수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딸의 행복을 빌었다. "너무 멀어서 제가 가기는 어렵잖아요. 딸아이가 사위와 함께 고향에 한번쯤 왔으면 좋겠어요."
글·임상준기자 zzuny@msnet.co.kr
사진·다문화 공동기획취재단
후원:지역신문발전위원회
1.경남 통영으로 3년 전 시집온 부찌터넝씨의 친정집. 벽면에 한류 스타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다.
2. 김티베씨의 부모들이 딸아이가 취재진 편으로 보내준 부산 지리가 새겨진 손수건을 보며 딸이 사는 곳을 찾고 있다.
3. 취재진이 찾아왔다는 소식에 레티와인씨의 가족들이 집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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