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촌유원지 놀이동산 끄트머리에 있는 노점 하나. 찜통에서는 물이 끓고 있었다. 땡볕더위에 더운 김이 폴폴 새나왔다. 간이의자와 파라솔 하나가 땡볕을 피하기엔 유일했다. 강복순(70) 할머니의 '야외 커피숍'. 할머니는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길을 오가던 이들은 차를 세워 냉커피를 주문했다. 커피를 주문하러 잠시 연 차창 밖으로 에어컨 바람이 새나왔다. 500원짜리 동전 두 개가 할머니 손에 떨어졌다. 가장 비싼 게 1천원짜리 냉커피. 따뜻한 커피는 500원이다. 라면, 꿀차, 마차, 심지어 맥주까지 다루고 있어 노점 리어카는 비좁았다. 그래도 팔리는 건 커피가 전부다. 하루 12시간 정도 일해서 30잔 정도를 팔면 전을 접는다.
손님이 뜸하자 할머니는 그제서야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3시를 넘은 시각. 당뇨로 시력이 점점 떨어진다면서도 뒤늦은 점심이다. 단출한 찬이었다. 물김치에 삶은 양배추가 전부. 할머니는 밥이 안 넘어간다며 밥을 물에 말아 꾸역꾸역 삼켰다.
"중복이라고 봉사단체에서 닭 먹으러 오라는데 허리가 아파서 갈 수가 있어야지. 침맞고 나니 좀 나아요."
아프다면서 어떻게 장사하러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30년 넘게 동촌유원지에 기대 밥을 먹고 살았고 아이들 교육도 시켰다. 커피 노점도 20년째. 날이 덥다며 손수 커피를 타 내놨다. 냉커피에서 미숫가루 맛이 났다. 자신만의 비법이라며 웃었다. 이제 손자들의 교육을 위해 커피를 타야한다는 할머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커피숍 문을 열었다. 성당에 가는 일요일에는 조금 늦게 문을 여는 게 차이라면 차이였다. 2003년 태풍 '매미'로 파라솔이 날아간 때를 빼고 항상 문을 열었다는 할머니의 말은 참말 같았다. 겨울 칼바람을 피할 피난처로 파라솔 뒤에는 2㎡ 규모의 천막부스도 갖추고 있었다. 나름 전통있고 이름난 야외 커피숍인 셈이었다. 냉커피 한 잔을 시켜 마시던 70대 노인은 "'할매표 커피'는 이쪽으로 자주 오는 사람들에겐 익히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나름 갖출 것 다 갖춘 야외 커피숍도 '오늘, 내일'하고 있었다. 9월이면 이곳에 로터리 형태의 길이 생기기 때문. 할머니의 커피숍 옆으로는 땅을 파내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동촌유원지 도로확장(1-1호선) 공사'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었다.
"이쪽으로 둥그런 길이 생긴다네요. 나도 다른 곳으로 옮겨가야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할머니가 허리가 아파 침을 맞아가면서도 기어이 장사에 나서는 까닭은 윤호(가명·14), 은호(가명·13) 두 손자 때문. 할머니가 두 손자와 함께 산 지는 3년째. 아들 내외가 갈라서면서부터였다. 아들(45)은 알코올 의존증세가 심각해 현재 병원에서 격리 치료중이다. 10년간 포장마차를 운영해 온 아들은 2003년 태풍 매미로 포장마차가 허물어지자 무허가 건물인 포장마차에 리모델링 비용을 쏟아부었다. 이게 화근이었다. 이내 건물은 철거됐다. 아들은 그때부터 폭음을 했다.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참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치료를 위해 아들을 병원에 보냈다. 하지만 별 무소득. "병원에서 내 보내달라"며 애원하는 아들의 전화를 뿌리칠 수 없었다. 술에 취한 아들은 다시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아들을 다시 병원에 보내면서 할머니는 지난해 4월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월 33만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돈으로 두 손자를 키우기에는 태부족. 할머니가 타는 커피가 곧 손자들의 밥이 됐다. 할머니는 "서른 아홉 나이에 혼자가 돼 억척스럽게 살아왔는데 지금까지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며 눈물을 찍어냈다. 순간 소낙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마른 땅을 적시는가 싶더니 다시 땡볕이 작렬했다. 땡볕 아래서는 숨이 턱턱 막힌다는 할머니에게도, 취재진에게도 숨통을 틔워줄 소낙비가 필요했다.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