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실업극복수기 당선작] 새로운 삶을 위하여

1997년 8월부터 제약영업을 한 나에게 실업이라는 시련이 닥칠지 몰랐다.

항상 영업에 대해선 자신감이 있었고, 대구'경북 지역을 책임지는 지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던 나에게는 더욱더 큰 상실감으로 다가왔다. 지점장이 되기 위해 이직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부도가 난 회사를 인수하여 크게 키울거라는 경영자의 말만 믿고 2006년 3월 회사를 옮겼지만, 자금사정으로 제품생산이 차일피일 미루어지고, 월급도 처음엔 80%가 지급되더니, 그마저도 50만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모기업인 ACTS의 경영권이 넘어가고 이텍스제약도 흐지부지되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1년여를 허송세월하다 보니 내 나이 마흔, 이제는 오라는 회사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있었다.

전직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 처자식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은 가슴을 답답하게 하였다.

2007년 4월부터 실업급여를 수령하며,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실낱 같은 희망으로 7월에 실시된 대구시 10급 기능직(운전원)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였다. 더욱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구직활동 등록을 위해 고용안정센터에 가도 나이가 많아서 취직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주위가 온통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막막감만이 생각을 사로잡았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 없어서 주택관리사보 시험을 쳐 보리라 마음을 잡았다.

시험을 준비하며 앞날을 그려보았다. '기술직에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무기력하게 실업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10년 했지만, 앞으로 20년을 더 해야 되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기술을 배우자. 그러면 어떤 기술을 배울까? 기술도 전자나 기계 분야는 젊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고 여러 생각에 잠겼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전기를 배우자고 결론을 내리고 국비과정으로 영남기술교육원에 전기설비 자동화 과정(2007. 7. 30~12. 24)에 수강신청을 하였다.

남들은 휴가를 가는데 나는 실업급여를 받는 실직자에다 국비로 교육을 받는 교육생의 신분으로 전락해 버렸다.

내년엔 이 시기에 가족과 같이 휴가를 보내리라 각오하고 열심히 교육에 임하였다.

교육 초기에는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과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교육내용으로 인해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특히 다른 일을 하며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모여 교육을 받으니 의견충돌이 심하였다. 그 의견충돌은 결국 31세의 청년과 50여세의 아저씨의 싸움으로 변했다. 서로 욕설을 하며 '죽이네 살리네'하는 것을 보니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이런 곳에서 내가 무얼 배우겠다고 있는지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중재자의 역할도 해 보았지만, 50여세의 아저씨는 중도 탈락하고 말았다. 그후 교육분위기는 안정이 되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전기 기술을 배울 수 없으며, 앞날은 없다는 생각으로 각종 모임에 발을 끊고 열심히 교육을 받았다.

전기설비 자동화 과정은 노동부의 늦은 인가로 인해 2007년 기사 4회와 기능사 5회 시험만 칠 수 있었다. 그마저도 기사 4회는 교육과정보다 수준이 높아 응시를 포기해야만 했다. 주택관리사 10회 시험을 준비하는 나에게는 역부족이었다.

기술교육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학교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10월 21일에 친 주택관리사 시험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아직도 시험을 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시험 잘 쳤냐고 묻던 아들의 질문에 눈물이 글썽거리던 기억이 선명하다.

이제 남은 희망은 전기기능사 시험뿐이었다. 전기기능사는 실기가 작업형이어서 기술 습득에 시간이 걸렸다.

9월 16일 기능사 필기시험을 본 후 10월부터 실기를 배우기로 교육일정이 잡혀 있었다. 전선을 연결하여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러나 불행은 파도처럼 밀려 온다고 했던가. 나는 그만 학원생들과의 모임 후 귀갓길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골절로 인해 6주 진단을 받고 입원을 해야 했다. 2007년 10월 26일이었다.

내 인생은 내가 잘못 산 탓도 있지만, 왜 이렇게 비참한 쪽으로 흘러가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또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일주일을 입원 후 11월 29일에 접수해 둔 실기시험을 치기 위해 아픈 발을 이끌고 퇴원을 해야만 했다.

이론교육장과 실기실습장은 불과 50여m였지만 발등 골절로 다리를 저는 나에게는 천길만길 아득히 멀기만 했다.

또한 실기실습은 5시간여를 서서 작업을 해야 했지만, 발등의 통증은 이번 만큼은 꼭 붙어야 한다는 나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이렇게 힘들게 실기실습을 하고 11월 29일 실기시험을 치고, 그 자리에서 내가 만든 시퀀스회로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보고 이제 전기기술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 기뻤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뿐, 또 다른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육원은 졸업할 때가 되어 가는데 취업이 되질 않았다. 나이는 많고 경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주택관리사 홈페이지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제출해 보았으나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비참하다는 생각보다 허무하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하려고 5개월을 기술을 배우겠다고 힘들게 보냈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렇게 기술교육원을 취직을 하지도 못하고 졸업을 하고 말았다. 실업급여도 전부 지급 받아 희망도 없이 힘겨운 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08년 3월 22일 대구시 기능직 공무원 시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다시 아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독서실에서 책과 씨름하였으나 또 고배를 마시고 한숨만 쉬는 것이 일과가 되어 버렸다. 인연까지 끊고 노력하였건만 내 실력이 이것뿐인가 생각하니 삶을 포기하고 싶었다.

차를 몰고 가면서 핸들을 꺾을까하는 생각도 수없이 하였다. 그러나 아내와 두 아들을 두고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다시 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에 구인등록을 하고 주택관리사 홈페이지의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내어 보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에게도 2008년 4월 7일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송림맨션 관리사무소에서 일을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비록 월급은 143만원이었지만, 경력을 쌓고 또한 전기기사 자격증을 따자는 생각으로 입사를 했다. 제약영업을 할 때와는 업무여건이 달라 많이 후회도 하고 방황도 하였다. 그러나 이 기회가 아니면 전직의 기회는 영영 없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틈틈이 공부하여 2008년 6월 전기산업기사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아파트 여건상 지금은 이직을 하여 범어동의 태왕유성하이빌에서 전기안전관리자로 선임되어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길이기에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개인적인 희생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참고 따라주는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작년에는 연말에 취득한 전기기능사 자격증 하나 뿐이었지만, 지금은 전기기능사 외에 보일러취급기능사, 전기산업기사, 컴퓨터 활용능력 2급 이렇게 4개의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또한 소방설비산업기사 필기시험에 합격한 상태에 있고, 지금은 제4회 정처리기사를 취득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 중이다.

내가 전기분야에서 일한다고 하니, 어머니께서는 고등학교 진학을 구미 금오공고로 간다고 할 때 말린 것이 후회스럽다고 말씀을 하신다. 하지만 어머니 때문에 다양한 인생을 살 수 있었노라고 농담삼아 얘기를 하곤 한다.

간간이 내가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고, 영업직으로 있을 때는 몰랐던 기술직들의 얇은 봉투에 실망을 느끼고 회의감이 들 때가 있지만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하며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게 일하고 있다.

모르던 기술들을 익히고, 경력을 쌓아 상위 자격증인 전기기사, 전기기술사를 취득할 것이며, 소방계통으로 소방시설관리사를 취득하기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희생을 감수하고 참아준 아내와 두 아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또한 40이 넘은 아들을 걱정해 주시는 어머니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된다.

3, 4년 뒤에는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내일은 또 다른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말처럼, 나도 또 다른 태양을 맞이할 것이다.

은한기(대구시 수성구 황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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