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10월 2일, 한국 간호사 251명이 독일(당시 서독)에 첫 파견됐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당시의 고용 조건은 월 보수 440마르크(110달러). 독일 땅에서 이들이 처음 맡았던 일은 알코올을 묻힌 거즈로 사망한 사람의 몸을 닦는 작업이었다. 1966부터 10년간 독일로 건너간 한국 간호사는 1만30명. 비슷한 기간 독일에 간 광부들과 한국에 송금한 금액은 연간 5천만달러로 한때 GNP의 2%대에 달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국민소득이 필리핀 170달러, 태국 220달러에 비해 한국은 76달러였다. 우리보다 못 사는 나라는 인도뿐이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자금이 필요했다. 미국은 군사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 이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처럼 분단된 서독에 돈을 빌렸다. 하지만 '가난한 대한민국'에 지급보증을 서줄 데가 없었다. 결국 간호사와 광부들의 임금을 강제 예치해 담보한 것. 오늘날 한국이 세계 11위의 무역국이 되고 국민소득도 2만달러 시대를 맞이하게 된 이면에 이런 과거가 있었다.
▶1869년 마하트마 간디 출생 ▶1950년 AFKN 방송 시작
정보관리부 이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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