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어하지만, 나는 혼자 밥 먹는 게 좋다. 내가 먹고 싶은 장소에서 내 맘대로 메뉴를 골라 어수선한 대화에 신경쓰지 않고 마음껏 여유를 부리면서 먹는 게 좋다. 햇살 좋은 날 밥상머리에 신문을 펼쳐놓고 혼자 느긋하게 늦은 아침을 먹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물론 가끔씩은 좋은 사람과 함께 밥 먹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한국의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여자 혼자 신문을 펼쳐놓고 스테이크를 먹고 있으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별나다? 불쌍하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혼자 먹는 마음도 몹시 불편하다.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서 4박5일을 보냈다. 거기서 혼자 밥먹기 1등 선수들을 만났다. 점심시간 다운타운의 빌딩에서 쏟아져나오는 일본의 회사원들이다. 두세 명씩 짝을 지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바쁘게 식당을 찾아들어간다. 일본의 식당들은 대부분 음식을 만드는 주방 바로 앞에 바(Bar)가 있어 혼자 앉아 간편하게 밥을 먹기에 딱 좋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바쁜 점심시간에는 이런 바에 낯선 사람들끼리 일렬로 나란히 어깨를 대고 앉아 말없이 신속하게 식사에 열중하는 회사원들이 빽빽하게 앉아있다. 밥 먹는 모양이 마치 독서실의 칸막이 책상 속에 웅크리고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것 같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일 밤 친구들과 더불어 독서실 칸막이 속으로 들어갔다. 가로와 세로가 겨우 70센티미터인 정사각형의 책상 위에 책과 공책을 펼쳐놓고 앉으면 나의 세계는 꼼짝없이 사과상자 같은 정육면체 속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그 작은 세계는 학교와 집, 세상의 온갖 소란으로부터 탈출하여 내 멋대로 꿈꾸고 놀고 상상할 수 있는 반평짜리 자유의 땅이기도 했다. 나는 학교나 집에서 읽을 수 없었던 소설책이나 만화책을 읽었고, 학교나 집에서 잘 수 없었던 잠을 마음껏 잤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연애편지를 쓰고, 두 시간이 넘도록 장문의 일기를 쓰고, 때론 시를 쓰고 소설을 썼다. 그 좁은 칸막이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넓은 세상을 독대했다.
밥 먹는 것 역시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홀로 마음껏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칸막이 독서실 같은 식당이 있다면 어떨까. 놀랍게도 혼자 밥먹기 1등 선수들의 나라, 일본에는 이런 식당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 식당의 정체는 일본의 전통라멘집이었다. 일본 전역에 여러 개의 체인점을 두고 있는 이 라멘집은 식사시간마다 입구에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있는 곳이다. 이곳의 메뉴는 일본라멘 단 하나 뿐이지만 그 라멘은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당신만을 위한 라멘임을 자랑한다. 왜냐 하면 라멘 면발의 감촉부터 국물의 맛, 토핑의 종류와 양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을 서있는 동안 나눠주는 작은 쪽지를 보고 나는 감탄했다. 쪽지의 내용은 이러하다. 라멘 면발의 감촉 ①매우 질김 ②질김 ③기본 ④연함 ⑤매우 연함, 면발의 기름기 정도 ①없다 ②담백하다 ③기본 ④많다 ⑤매우 많다, 마늘 ①없다 ②약간 ③기본 ④1/2쪽 ⑤1쪽 등등 이런 항목이 9개나 된다.
라멘집 내부는 커텐이 내려진 세 개의 좁은 통로로 이루어져 있다. 빈 자리가 났다는 표시의 빨간불이 들어온 통로로 쪽지를 들고 들어간다. 커텐을 젖히는 순간 긴 통로 속은 놀랍게도 영락없는 칸막이 독서실이다. 칸막이 책상들이 일렬로 끝도 없이 길게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은 수험생처럼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라멘을 먹고 있다. 칸막이마다 라멘그릇에서 올라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친구와 나는 나란히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밥을 먹으러 올 땐 함께였지만 밥을 먹는 그 순간만큼은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만 한다. 칸막이 속 정면의 커텐이 열리더니 손 하나가 쑥 들어와 쪽지를 가져간다. 짧은 순간 열려있는 틈으로 건너편 칸막이 책상에 앉은 사람의 상반신이 보였다. 그 무엇도 아닌, 오직 라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이렇게 좁은 칸막이 속에 들어와 웅크리고 있는 그 사람의 상반신 때문에 나는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그 사람 편에서 보면 나 역시 똑같은 모양으로 앉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웃으면 안된다. 이곳은 공부하는 독서실만큼이나 엄숙한 곳이니까.
다시 손 하나가 쑥 들어와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라멘 한 그릇을 놓고 사라졌다. 동시에 커튼도 닫혔다. 나는 이제 라멘 한 그릇을 마주하고 완전히 좁은 정육면체의 세상 속에 홀로 갇혔다. 옆 자리의 친구도 나도, 라멘맛이 어떻다는 등의 말을 나누지 않는다. 이 집에서 그건 규칙 위반이다. 지구는 넓고, 할 일도 많지만, 자유의 땅은 왜 이토록 좁은 것일까. 우리는 묵묵히 라멘을 먹는다.
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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