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요즈음 같은 장은 처음"…가슴 치는 투자자들

"요즘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합니다. 주가 때문에 그렇지만 어떤 손님들은 한밤중에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고통이 크다는 것이지만 정말 단 1초도 쉴 수 없는 불면의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구시내 한 증권사 지점장)

주가가 대폭락을 거듭하고 있는 요즘, 피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다.

가장 마음이 상하는 사람들은 단연코 투자자들이지만 투자자들 못지 않게 가슴을 뜯는 사람들은 증권사나 은행 직원들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증권사 직원에 비해 투자상품 판매경험이 적은 은행 직원들의 심리적 고통은 더 크다.

대구 달서구의 한 은행 지점에 근무하는 A씨. 그는 펀드 수익률이 하락한 것이 자기 책임도 아닌데 무조건 은행 직원에게 '달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정말 출근하기가 싫다고 했다.

"엄밀히 따지면 펀드 운용은 자산운용사가 합니다. 은행은 단지 판매대행을 한 것 뿐이지요. 손실을 낸 것은 은행이 아닙니다. 그런데 은행 지점에 와서 다짜고짜 '왜 펀드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고 따집니다. 어떤 손님들은 지난해 말 주가가 폭등할 때 스스로 찾아와 '펀드 주세요' 했지만 이제는 '예금가입하러 왔던 나를 꼬드겨 엉터리 펀드에 강제 가입시켰다'며 책임을 지라고 합니다. 요즘은 금융회사에 들어온 것을 정말 후회합니다." A씨는 이대로 간다면 신경안정제를 먹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20년 가까이 증권업계에 몸담아온 베테랑 증권사 지점장 B씨도 요즘처럼 괴로운 적이 없었다고 했다. 수많은 폭락장을 보아왔지만 이번처럼 캄캄한 적은 없었다는 것.

"이제는 손님들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설명해주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예측이 틀리고 있기 때문이죠. 차트를 보면서 기술적 분석이니 이런 따위의 말을 하기 힘듭니다. 돌아서면 틀리니까요. 손님들로부터 헛경력만 쌓았다는 얘기를 들어도 이제 무덤덤합니다." B씨는 삶이 비참해졌다고 했다.

상당수 증권사 직원들은 주머니 사정도 최악이다. 성과급 비중이 높은 증권사 직원들은 주가가 떨어져 수익이 없으면 급여도 동반 급락한다. 특히 안정적으로 수익이 나오는 펀드의 비중이 높은 대형 증권사와 달리 주식 매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중소형 증권사 직원들의 주머니는 요즘 텅 비어가고 있다.

"손가락만 빤다고 보면 됩니다. 손님들은 수익률이 형편없다고 증권사 직원들을 욕하지만 저희는 당장 입에 거미줄을 치게 생겼습니다. 이 상태로 폭락장이 지속된다면 정말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할지 모릅니다" 대구시내 한 중소형 증권사 직원은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제 심리학 박사가 다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는 손님은 어떻게 달래고, 말로 화내는 손님은 어떻게, 멱살을 쥐는 손님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조금만 사례를 더 쌓는다면 박사 논문을 써도 될겁니다. 이 지옥같은 폭락 장세속에서 많은 것을 익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듣는 사람들은 재미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당하는 우리는 정말 비참할 뿐입니다."

이렇게 얘기한 대구 수성구의 한 증권사 직원은 매일 빨간색 넥타이를 매면서 주가상승을 기원한다고 했다. 그는 제일 싫은 색깔이 파란색이라며 집안에 파란색 물건이 보이면 무조건 치운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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