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잘 익은 사과/김혜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마음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을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믈오믈 잘도 잡수시네요

둥근 것은 다 아름답다. '잘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는 이 찬란한 계절에 지구는 한껏 눈부시게 아름다워진다. 이 둥근 지구별을 '잘 익은 사과'로 여기고 깎아대는 사람이 있다. 과도로 사과 깎듯이 자전거 바퀴로 사각사각 지구를 깎아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도는 행위가 사과를 깎는 일과 유추관계로 맺어진다.

이 호방한 상상력 앞에 완강한 시간의 사슬도 풀려 '아가'와 '노망든 할머니'가 같은 여자로 오고간다.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서 잡수시는 '그렇게 큰 사과'의 시구에서 을 주목하자. '그렇게 큰 사과'가 이 둥근 지구별이 아닌가. 천지만물을 '오믈오믈' 다 삼키는 시간이 마고할머니인 셈이다. 생성에서 소멸로 옮겨가는 시간의 운행에 절로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시인

최신 기사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8일 겸직 문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침묵을 지켰으며,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은 이를 옹호했다. 홍...
화학소재 기업 카프로가 상장폐지를 위한 정리매매 첫날 90% 이상 급락하며 현재 340원에 거래되고 있고, 거래소는 상장폐지 절차를 재개한 ...
올해 추석 연휴는 9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이며, 주 5일제 근로자 기준으로는 9월 28일 월요일까지 쉴 수 있는 가능성이 낮다. 정...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