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잘 익은 사과/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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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 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온 나락들처럼

바퀴살 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사람의 마음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을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어요

그럴 때마다 나 돌아온 고향마을만큼

큰 사과가 소리없이 깎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믈오믈 잘도 잡수시네요

둥근 것은 다 아름답다. '잘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리는 이 찬란한 계절에 지구는 한껏 눈부시게 아름다워진다. 이 둥근 지구별을 '잘 익은 사과'로 여기고 깎아대는 사람이 있다. 과도로 사과 깎듯이 자전거 바퀴로 사각사각 지구를 깎아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도는 행위가 사과를 깎는 일과 유추관계로 맺어진다.

이 호방한 상상력 앞에 완강한 시간의 사슬도 풀려 '아가'와 '노망든 할머니'가 같은 여자로 오고간다.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파내서 잡수시는 '그렇게 큰 사과'의 시구에서 을 주목하자. '그렇게 큰 사과'가 이 둥근 지구별이 아닌가. 천지만물을 '오믈오믈' 다 삼키는 시간이 마고할머니인 셈이다. 생성에서 소멸로 옮겨가는 시간의 운행에 절로 숙연함을 느끼게 하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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