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가진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늘 조심스럽다. 성공 뒤에 숨어있는 사회적 편견과 몰이해, 불친절한 법과 제도가 단지 개인의 노력만으로도 넘을 수 있는 것인 양 호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으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3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한 송경태(47)씨의 사정도 다르진 않다. 시각장애인 도서관장이자 시의원으로 그가 거둔 성공의 이면에는 고열과 모래폭풍, 소금사막보다 힘든 불편과 무관심이 존재한다. 사하라 사막의 태양과 고비사막의 황사바람, 아타카마 사막의 소금자갈보다 더 넘기 힘든 일상의 벽들이 여전히 막고 있다는 얘기다. 21일 오후 전북 전주시의회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잘 웃지 않았다. 2시간 이어진 인터뷰 동안 그가 웃는 표정을 지은 건 아내와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뿐이었다.
◆극한을 넘어 달리다
56℃까지 치솟는 한낮의 사하라 사막. 이글거리는 태양과 후끈 달아오른 모래 열기에 폐부가 따갑다. 주변은 죽음같이 적막하다. 18㎏이나 되는 배낭이 점점 어깨를 짓누르고 거칠게 뛰는 심장소리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20㎞쯤 달렸을까. 미칠 듯이 더운데도 땀이 나지 않는다. 졸린다. 뜨거운 모래 위에 배낭을 던지고 털썩 주저앉았다. '잠들면 죽는다.' 그러나 졸음은 순식간에 의식을 제압했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는 순간,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정신 차려요!' 사그라지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시 이를 악물었다. 쓰러지고 깨어나길 4차례. 모래언덕에서 미끄러질 때마다 눈물이 났다. 2005년 사하라 사막 극한마라톤대회 첫날, 그는 식량의 3분의 2를 내버리며 42㎞를 달렸다. 107명의 선수 중 30명이 경기를 포기했다. 그가 거둔 순위는 77등.
지난해 고비 사막 대회는 고산병이 문제였다. 해발 4천m를 넘는 고원지대. 70° 경사길을 20㎞는 오르고, 20㎞는 내려가야 했다. 주어진 시간은 불과 9시간. 그가 손을 너울거리며 설명했다. "해발 3천m를 넘으니 고산병이 오더군요. 속이 메스껍고 현기증이 나고 계속 구토를 해요. 눈이 내리면 황토는 진흙탕으로 변해버려요. 발이 빠지면 떨어지지 않죠. 자갈밭을 뛸 때마다 발목을 삐는 일은 예사였고요."
지난 4월 완주한 칠레 아타카마 사막은 '악마의 발톱'으로 불리는 소금 사막으로 악명이 높다. 250㎞ 구간 중에 53㎞가 소금밭이다. 주먹 크기의 소금덩어리에 앉으면 엉덩이가 터지고 달리면 신발이 찢어진다. "얼어붙은 강에 들어가면 머리가 찌릿찌릿하죠. 발을 잘못 디디면 쇳조각 같은 자갈이 튀어올라 스타킹을 찢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려니 더 힘들죠. 장애인이라고 봐주는 것도 없어요."
그가 처음부터 극한 마라톤에 도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운동 삼아 안내견과 함께 걷는 게 전부였다. "1990년대 중반부터 마라톤 붐이 일었는데 뻥 뚫린 길을 신나게 달리는 생각만 해도 참 신날 것 같더라고요." 그가 가능성을 확인한 건 1998년 춘천국제마라톤 5㎞ 구간. "과연 뛸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30분 정도 걸렸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이듬해 6월 그는 안내견과 함께 미국 대륙 도보 횡단에 나섰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캘리포니아까지 2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함께 걷는 이들도 모여들었다. "미국인들이 1㎞를 걸을 때마다 10센트씩 모금을 하는 거예요. 자신들에게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며 기부를 하더군요. 덕분에 많은 도움을 받았죠. 도보횡단을 하면서 사하라 극한 마라톤 얘기를 듣고 7년간 준비했어요." 2002년에는 목포에서 임진각까지 국도 1호선을 따라 걸었고, 2006년에는 부산~임진각까지 625㎞를 도보로 횡단했다. 그는 왜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일수록 완주 후의 성취감이 더 크다는 걸 느끼죠. 준비 과정도 삶의 활력소가 되고요.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과정이 어쩌면 중독인 듯싶어요."
◆장애를 넘어 사회로 나서다
그가 빛을 잃은 건 26년 전이다. 군에 입대한 지 6개월 만에 작전 중 수류탄이 눈앞에서 터졌다. 그는 "당시 폭음도 듣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이었다"고 했다. "눈에서 불이 번쩍하는 순간 의식을 잃어 기억도 별로 안 난다"고도 했다. "6개월의 투병 생활 동안 3번이나 수술을 했는데 눈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어요." 제대는 했지만 살 길이 막막했다. 평생 방에 갇혀 살아야 될 줄 알았다. "2남 3녀의 장남인데 가족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어머니는 늘 부엌에서 울기만 하셨고 아버지는 당신의 눈이라도 주겠노라며 전국에 유명한 병원은 다 다녔어요." 절망감은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다. 6차례의 자살 시도.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 제게 시각장애인으로 재활하라는 의사는 한 명도 없었어요. 결국 재활이 늦어진 거잖아요."
방안에서 라디오만 끼고 살던 그에게 희망을 준 건 한 시각장애인 대학생의 사연이었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어요. 대구대 특수교육학과 학생이었는데 방송국에 문의를 했더니 다음날 점자책과 흰지팡이를 들고 저를 찾아온 거예요. 못다한 공부를 하라는 충고에 한일장신대 사회복지학과에 지원을 했죠."
물론 쉬울 리가 없었다. "석사과정을 하면서 300쪽이 넘는 전공서적을 일일이 찢어서 동급생들에게 나눠주고 녹음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제대로 될 리가 없죠. 어떤 사람은 1년 뒤에 가져오기도 하고. 리포트를 아예 못 낸 적도 있어요. 그 경험이 바탕이 돼서 시각장애인 도서관을 만든 거예요."
어렵게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따고 석사과정을 마쳤지만 그를 반겨주는 곳은 없었다. 수십 통의 이력서를 낸 끝에 1년간 무보수로 일하기로 하고 시각장애인 잡지사에 들어갔다. 국회든 경찰서든 자신이 갈 수 있는 곳은 무조건 발품을 팔았다. "보지도 못하는데 무슨 필요가 있느냐며 보도자료도 주지 않아요. 끈덕지게 버텨서 받아낸 뒤에 녹음을 하고 점자로 찍어서 기사를 썼어요." 그렇게 1년을 뛰어다니자 '쓸만한 사람'이라며 사회복지시설에서 영입제의가 왔다. 2000년에는 사재를 털어 전북에서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도서관'을 열었다.
전북 시각장애인 도서관은 해마다 새로운 결실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점자판 '아동문학 전집'을 냈고, 올해는 '촉각 점자그래픽 동물도감'을 펴내 화제가 됐다. 내년에는 10권짜리 점자판 시선집(詩選集)을 낼 계획이다. 세계 여행 가이드북도 3년째 공을 들이는 중이다. 전국의 2천500여곳을 직접 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한 여행 가이드다. 시각장애인이 내는 여행 가이드라니. 의아했다. "경치를 볼 수가 없잖아요?" "들을 수 있잖아요. 제가 예전에 여행을 많이 다녔으니 색을 다 알아요. 또 일일이 만져보고, 옆에 사람에게 무슨 색인지 물어보기도 하고요. 저는 남들은 그냥 지나칠 풍경도 일일이 발품을 팔고 또 만져보기 때문에 굉장히 자세하게 여행을 해요. 가령 설악산에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들이 흔들바위와 울산바위를 가보지도 않지만 저는 만져봐야 되니까 반드시 갑니다. 오래된 고찰의 문살 모양도 만져봐야 하니 더 자세하게 아는 거죠."
그는 2006년 전주시의회 비례대표로 지방 정치에도 뛰어들었다. "아무리 힘있는 자들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외쳐도 그때뿐이에요. 이해당사자가 제도권에 들어가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어요. '작은 우산'과 '큰 우산' 중에 큰 우산이 되자. 작은 우산은 혼자 비를 피할 수 있지만 큰 우산은 우산 하나로 여러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장애인으로서 의정활동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수많은 자료를 읽기가 어렵고, 일일이 점자로 바꿔야 한다. 영상물 자료는 더욱 난감하다. "모든 분야에 관심을 갖긴 힘들고 장애인과 노인, 여성 문제에 집중을 합니다. 장애인 편의 시설도 부족해요. 더불어 사는 공동체 구성원이라고 생각하고 조금만 관심을 주면 좋겠어요."
◆난 여전히 꿈을 꾼다
요즘 그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남극 마라톤 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이번 남극 마라톤을 완주하면 '극한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이 대회는 사하라 사막과 고비 사막, 아타카마 사막을 완주한 사람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진다. 영하 35℃의 혹한과 곳곳의 크레바스를 통과하며 250㎞를 달리는 죽음의 레이스다. 그가 완주에 성공하면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가 된다. 대회 준비도 만만치 않다. 매일 오전 5시부터 2시간 동안 20~30㎞를 달린다. 기초 체력을 다지기 위해 오리걸음을 100회씩 2번을 하고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60~120번씩 한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전주 인근 모악산에서 산행도 한다.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하잖아요. 때로는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면 완주의 쾌감과 행복이 있어요. 마라톤을 통해 기른 자신감과 도전 정신이 장애인을 향한 사회적 편견과 몰이해를 이겨내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그에게는 오랫동안 품어온 3가지 꿈이 있었다. '결혼하는 것'과 '컴퓨터 잘 다루는 것', '대학 가는 것'. 20년의 노력 끝에 그는 그 꿈들을 모두 이뤄냈다. "아름답고 웃음이 많은 아내의 목소리에 반해 만난 지 3개월 만에 결혼을 했어요. 또 2001년에는 인터넷 상에서도 접속을 하면 음성안내가 나오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대한민국 신지식인상'도 받았어요. 또 대학도 올해 박사 과정 논문만 남았고요. 소원 3가지를 달성한 거죠."
이제 그는 새로운 소원 3가지를 꿈꾼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 '희망도서관', '평평운동'. 희망도서관은 장애인에게 희망을 주는 학교다. '사하라관', '고비관', '아타카마관', '남극관'을 만들어 소개하고 자포자기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생각이다. '평평운동'. 노인이나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타고 어디든지 접근할 수 있도록 건물 내외부의 턱을 모두 없애자는 운동이다. "모든 건물이나 교통시설, 집안의 방문턱까지 평평하게 만들어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게 해야 돼요. 앞으로 20~30년은 해야 인식이 될 테니 후세의 몫이기도 하죠."
그에게 "3일 동안 눈을 뜰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제일 먼저 천사 같은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것. 두 번째는 부모님과 아이들의 얼굴을 볼 거예요. 집 주변을 산책하고 옆집 아저씨와 고스톱도 치고, 운전도 하고. 세 번째날은 책을 읽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면서 보내겠죠." 누군가에게는 참으로 평범한 일상이 그에게는 이루지 못할 간절한 소망인 셈이다. 그의 최종 목표는 세계 3대 극점을 밟아보는 것이다. "북극은 42.195㎞를 달리는 코스인데 어렵지는 않을 것 같고요. 에베레스트 정상에도 도전할 겁니다." 눈을 뜨고 3일을 사는 것과 눈을 감고 30년을 사는 것 중에 그는 어느쪽을 선택할까. "당연히 눈을 뜨고 3일을 사는 것이 낫죠."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 송경태는?=1961년 전북 오수 출생. 세계 4대 극한 사막 마라톤 대회 중 3개 대회를 완주한 세계에서 유일한 장애인이다. 1982년 군 복무 중 사고로 두 눈의 시력을 잃은 '국가유공자 상이 용사'. 사고 후 사회복지학으로 방향을 돌려 사회복지사 점자 주간지 기자로 일했다. 2000년 전북 시각장애인도서관을 열고 '아동문학 전집' '동물도감' 등을 발간했고 2006년부터 전주시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올해의 장애극복상(2002), 대한민국 신지식인(2004)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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