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본 지가 한참 지났다.
사람이 많은 때를 피해 늦여름이나 가을 겨울에 가슴이 답답해지거나 가끔은 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무작정 바다로 향하곤 했다. 가서 바다를 보고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고 돌아와서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 어느 날, 졸업을 하고 무엇을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호하다는 생각에 잠겨 친구들과 술만 마셨다. 당당히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갈 거라고 말하는 친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기껏해야 대학원 정도였다. 그렇게 술만 마시다가 초가을로 접어드는 9월 어느 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바다로 갔다.
밤새 술을 마시며 기차를 타고 가서 이른 아침 정동진에 내렸다. 바다를 봤다. 술기운에 픽 쓰러져 잠이 들고 한 시간 뒤 일어나 다시 바다를 봤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바뀌지 않았다. 툭툭 모래를 털고 정동진을 나왔다. 버스터미널로 가 공중전화로 평소 말수가 적은 친구와 통화를 했다.
"어디야?" "정동진" "뭐하는데?" "그냥왔어" "누구랑?" "혼자" 썰렁한 대화를 나누다가 친구가 한마디 했다.
"산이나 가지 바다를 뭐 하러 혼자 가냐?" "어차피 내려올 건데 고생해서 올라가야 하잖아"
그 뒤 이어진 친구의 한마디가 아직도 선명하다. "산에 올라가 봐야 내려오는 맛도 알지"
그 길로 나는 버스를 타고 정동진에서 가장 가까운 계룡산으로 갔다.
하룻밤을 자고 새벽부터 산에 올랐다. 그렇게 산에 오르고 난 뒤에도 나는 늘 바다를 찾는다. 대신 한 가지는 달라졌다. 그땐 뭔가를 찾고 싶어서 절실하게 바다를 찾았지만 그 뒤로는 그냥 편하게 간다. 가서 바다를 보고 그리고 돌아온다. 그뿐이다.
힘들고 지쳐서 바다로 향하기는 하지만 돌아가면 또 그런 일상의 반복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올라가 봐야 내려오는 길도 알고 그 맛도 알 수 있으니까.
아마 그 친구는 자신이 그때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할 거다.
그래도 상관없다. 언제까지나 나는 그 말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류재필(대구 달서구 성당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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