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기섭의 목요시조산책] Blackout/정용국

어머니 김매시다 눈앞이 하얘지며

근심 끈 탁 놓고서 아득히 굴렀다던

새까만

새벽 별 하나

이울던 저 여울목

마지막 지하철에 고단한 섶을 진 채

귀 떨어진 빈 몸뚱이 어쩌지도 못하고

잽싸게

꼬리를 자르며

각다귀로 뒹군다

앞길 캄캄해지고 눈앞이 하얘지는 일

검고 흰 것이 어찌 이리 통할까

아득한

외마디 소리에

뚝 끊기는 발자국

생존의 극한 상황입니다. 들일을 하다 말고 그만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 눈앞이 아뜩한 현기의 순간, 어머니는 여울목에 이우는 별을 봅니다. 하얘진 눈앞과 새까만 별빛이 기억 속으로 다급하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혼절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암전과 함께 무대는 도시의 지하철 역두로 바뀝니다. 어지러운 불빛 사이로 고단한 섶을 진 채 비척거리는 아들의 모습. 마지막 지하철을 잡아 탔으나, 이내 앞길은 캄캄해지고 눈앞이 하얘집니다. 삶의 벼랑 끝, 뚝 끊기는 발자국이 또 한번 정신의 암전을 예고합니다.

절망에 대한 인식은 '흑(앞길이 캄캄하다)'과 '백(눈앞이 하얗다)'으로 갈리지만, 검고 흰 것의 바탕은 매한가집니다. 첫째, 둘째 수의 간극. 그 심저에 깔린 의미의 저인망을 끌어올리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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