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월의 마지막 밤]중년을 즐긴다-1인4역 의사 남복현

"음악보다 재미있는 일, 세상에 없어요"

대구 남내과의원 남복현(49) 원장의 중년은 즐겁다. 20년을 쉬다가 8년전부터 다시 시작한 '음악' 때문이다. 낮에는 당뇨·심장 전문의로 환자들을 진료하는 평범한 의사지만 밤만 되면 클래식기타리스트, 합창단원, 오페라 가수로 변신한다. '이중(?)생활'을 살며 열정의 나날을 보내는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31일부터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오페라 '춘향전'을 앞두고 공연 연습이 한창인데다 12월 13일 예정의 '클래식기타 독주회'까지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6시 진료가 끝나면 바로 무대로 달려가 김밥 한줄로 저녁을 때우곤 공연 연습에 매달립니다. 남들은 왜 사서 고생이냐고 핀잔을 주지만 내겐 너무 행복하기만 하죠. 음악만큼 재미있는 일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으니까요. 남들은 공연 시간 2시간이 지루하다지만 내겐 2,3분처럼 짧기만 합니다."

남 원장의 음악 인생 출발점은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네 형을 따라 간 음악학원에서 우연히 듣게 된 클래식기타 연주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 "프란시스코 타레가의 '알함브라의 궁전'이라는 곡이었습니다. 타레가는 기타 한 선을 36분의 1박자로 세번 튕기는 트레몰로 주법으로 유명한 전설적 기타리스트죠. 알함브라의 궁전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슬퍼하던 타레가가 트레몰로 주법으로 연주한 곡인데, 가슴을 울리는 그 아름다운 선율이 한시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 거에요."

기타의 기자도 모르던 그는 알함브라의 궁전에 반해 음악학원 악보를 몰래 찢어 왔고,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누나 기타로 밤낮없이 지독한 연습에 매달려 마침내 전곡 연주에 성공한다. "새벽 5시쯤이었을 거에요. 연주를 끝내는 순간 창문 너머 눈이 내렸는데, 그때 그 감동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클래식기타에 대한 남 원장의 재능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그가 고1 때 계명대 강당에서 연주회를 가졌던 독일의 한 유명 클래식기타리스트는 연주회 직후 열렸던 워크숍에서 남 원장의 연주를 듣곤 전액 장학금을 제안하며 독일유학을 권했을 정도. 집안 반대가 심해 영남대 의대에 진학할 수밖에 없었지만 클래식기타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의대 재학시절 '제1회 한국클래식기타연주'에 입상한 뒤 독주회까지 열었던 것.

하지만 남 원장은 의대 본과 진학과 함께 음악에 대한 꿈을 한동안 접을 수밖에 없었다. 레지던트를 거쳐 미국 유학을 떠나야 했고, 결혼과 개원에 이르기까지 현실의 삶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20년이 정신없이 흐른 2000년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문득 되살아났어요. 성악 하던 친구들과 뜻이 맞아 '늘푸른합창회'를 조직했죠. 4년전엔 오디션을 거쳐 달서구립합창단에 가입했는데, 구립합창단에 가끔 협연을 요청하는 오페라 공연 때마다 실력을 인정받아 무대에 오른 겁니다."

남 원장의 노래실력은 클래식기타 연주 솜씨못지 않게 대단하다. 달서구립합창단서 바리톤 파트 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대학시절 대구시립합창단 1기 단원으로도 활약했다. 하지만 그의 주전공은 뭐니뭐니해도 클래식기타 연주. 늘푸른합창단이나 달서구립합창단 정기연주회에서도 2,3곡씩은 꼭 클래식기타 솔로 연주를 함께 해왔던 남 원장은 더 이상 솜씨가 녹슬기 전에 마지막 독주회에 도전해 보고 싶었고, 결국 '따뜻한 이웃사랑-육현의 선율과 춤의 향기를 싣고서'라는 이름의 독주회를 기획했다. 12일 13일 열릴 예정인 그의 독주회에는 계명대 무용학과 편봉화 교수의 춤공연이 어우러져 무대를 빛낸다.

남 원장은 "밤새서 공부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지만 클래식기타를 연주할 때만은 시간 가는 줄 모른다"며 "의사로서의 지난날에 후회는 없지만 집안 반대만 없었다면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클래식기타 연주자로 명성을 떨쳤을지도 모른다"고 환히 웃었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사진 정재호기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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