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전국 어딜 가나 그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재나 교량 또는 조형물마다 야간조명장치를 달아놓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밤중에 약간은 낯선 장소에서 은은하거나 화사한 빛깔로 만나는 문화재의 모습은 확실히 새롭고 색다른 인상을 남겨주며, 때로 그 고장의 자랑거리로 부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볼거리라고 할지라도, 밤새도록 저렇게 불을 훤히 밝혀놓을 필요까지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꼭 어려운 경제상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야간조명 자체가 혹여 문화재 보존에 해악요인이 되는 측면은 없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건 물건이건 밤이 되면 쉬어야 하는 것이 이치이거늘, 밤낮으로 저렇게 빛에 노출시키는 건 그야말로 문화재를 혹사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조명발에 의지하여 너무 문화재의 외형을 치장하는 것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측면에서 설령 야간조명장치를 하였더라도, 밤중에 불을 켜는 시간만큼은 최소한으로 줄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이러한 야간조명 말고도 지나친 인공조명 사용이 문화재의 감상을 도리어 방해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국립중앙박물관에 별도의 진열실을 마련하여 전시하고 있는 '반가사유상'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곳에는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불교조각품으로 손꼽히는 국보 제78호 및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두 점이 교대로 한 번씩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 들어서는 것은 마치 무슨 동굴 속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컴컴한 가운데 반가사유상에만 스포트라이트를 켜두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반가사유상의 가치가 더 고양되는 것인지, 아니면 더 엄숙한 마음가짐이 생기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너무 관람환경이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반가사유상은 빛에 민감해서 보존상 필요에 의해 빛의 세기를 조절해야 하는 서화류의 유물과는 달리 그럴 필요가 없는 존재인데, 구태여 그러한 장치를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암흑 속에 밀어 넣고 인공조명을 통해서만 문화재의 감상을 강요하는 것은 차라리 고역에 가깝다.
물론 박물관의 전시전문가들이 나름으로 고심하여 정한 방법일 테지만, 그렇더라도 틀에 박힌 인위적인 이미지로 반가사유상을 감상하는 것은 너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좀 더 훤하고 밝은 상태에서 반가사유상을 구경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문화재를 감상하는 맛이 더 깊지 않았을까 말이다.
인공조명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고 보니, 자연스레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불의 사례가 떠오른다.
흔히 '백제의 미소'라고 일컬어지는 이 마애불은 지난 1959년에 발견되자마자 국보로 지정되었고, 곧이어 1965년에는 문화재의 훼손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보호각을 설립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위적 조치가 오히려 통풍과 채광을 막는 바람에 내부에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는 역효과를 불러오게 되었던 것이다.
더구나 컴컴한 보호각 안에서는 마애불을 감상할 때마다 막대기에 매단 전등불을 비춰 가며 애써 '백제의 미소'를 찾아내는 촌극이 수시로 빚어지곤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05년에 우선 보호각 일부를 개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가 지난해 말에는 이마저도 완전히 철거하여 지금은 완전히 원래 상태의 서산 마애불로 돌려놓은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문화재는 그저 자연조명 아래서 자연스럽게 감상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 한다. 그것이 문화재 본연의 모습에 가장 근접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순우 우리문화재자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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