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에서는 막(幕) 다음으로는 장(場)이라는 구분이 나온다. 장은 막 안에서 각 장면을 분할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국어시간에 배운 것을 떠올려보자.
막의 구분은 이름 그대로 막, 즉 커튼이 내려오고, 장의 구분은 암전(暗轉)으로 한다고 배웠을 것이다. 옳은 말이다. 굳이 암전이 아니라도 상관이 없지만, 최소한 장이 바뀔 때는 막이 내려와서는 안 된다. 즉 커튼이 내려오면 막이 바뀌는 것이며, 커튼이 내려오지 않으면 막이 아니라 장이 바뀌는 것이다. 이것은 오페라 공연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간혹 우리나라 오페라 공연에서 장과 장이 바뀔 때 무대 변환이 어렵다는 이유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가끔 있다. 이것은 원작 오페라의 정신과 작곡가나 대본가가 의도한 의미를 심하게 왜곡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무대 변환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막을 내려서는 안 된다. 왜 그럴까? 무대 변환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장 전환의 묘미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장의 구분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장면 변환이 어려워 보인다고 하더라도 연출가는 결코 그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대신에 그것을 자신의 아이디어와 솜씨를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자주 막이 내려오면 관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막이 내려온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객석의 불이 켜지고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므로 막을 내려놓고 관객들을 좌석에 그냥 앉혀 놓는 것도 옳지 않은 일이다. 일단 막을 내렸으면 객석의 불을 켜고 관객들이 자유롭게 로비로 나갈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만일 원작에는 막으로 구분이 되어 있어도 어떤 이유에서 끊지 않고 이어서 공연을 계속하고 싶다면, 이 경우에도 막을 내릴 것이 아니라 장 변환의 수준에서 장면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암전한 상태에서 변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장면 변환은 극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작곡가들 중에는 장이 바뀔 때 '장면변환음악'이라는 것을 삽입하여 연주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장면이 변환되는 것을 일부러 관객들에게 노출시키면서, 그 동안에 장면변환을 위해 작곡된 음악이 연주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대부분이 관현악곡으로서 마치 간주곡(間奏曲)과 흡사한 형태로 여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의 반지'에는 요소요소에 장면변환 음악을 넣어서 장의 변환이 멋지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계획해 놓고 있다. 즉 4부작 '니벨룽의 반지'의 제1부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은 하나의 막으로 이루어진 단막(單幕) 오페라이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네 곳의 다른 장소가 이어 나오게 되어 있다. 그것도 완전히 다른 장소로서 무대를 다 바꾸어야 가능한 장소들이다. 즉 제1장은 강물속이며, 제2장은 지상(地上)이고, 제3장은 지하(地下)세계이며, 제4장은 다시 지상이다. 이렇게 물속과 땅위와 땅속이 번갈아가며 나오게 된다. 아무리 잘해도 빨리 변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바그너는 장과 장 사이에 장면변환 음악을 넣어서, 그 음악이 흐르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무대를 바꿀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그런 만큼 장과 장 사이에서는 장면변환을 노출시키는 것도 하나의 공연이며 예술의 일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장면변환 음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바그너의 '파르지팔'일 것이며 '로엔그린'에도 그런 형태의 음악이 나온다.
오페라 평론가·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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