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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 넘긴 스포츠 스타들…세월도 비껴서 가나?

복싱계의 스타 중 한 명인 미국의 에반더 홀리필드가 최근 복싱 헤비급 세계챔피언에 재도전했다. 그의 나이 46세.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링에서 이 정도 나이면 환갑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세월을 무색케 하는 노익장으로 홀리필드는 다시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홀리필드만이 아니다. 이종 격투기에도, 구기 종목에서도 불혹을 넘긴 스타들이 수두룩하다.

◆'불혹'이 무색한 링 위의 남자들

홀리필드는 지난 12월 20일(한국시각)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WBA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매치에서 니콜라이 발루에프(35·러시아)에게 0대2로 판정패 했다. 2라운드 막판 승기를 잡나 싶었지만 이후 열세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경기 전 "40대를 위해 승리하겠다. 나이가 모든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했던 그는 경기 후 "내 목표는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이라며 강력한 재도전 의사를 밝혔다.

복싱계 노익장의 원조는 조지 포먼이다. 1949년생인 그는 1977년 은퇴한 뒤 10년이 지난 1987년 39세의 나이로 복귀했다. 그의 별명은 '할아버지 복서'. 결국 그는 1994년 45세의 나이로 WBA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 세상을 놀라게했다. '사형 집행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버나드 홉킨스(44)는 2004년 40세의 나이에 세계통합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것도 6체급을 제패한 스타 오스카 델 라 호야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델 라 호야 역시 올해 36세의 나이로 현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남성미를 넘어 야성까지 느껴지는 거친 세계 이종격투기 무대에도 노익장은 있다. 미국의 종합격투기 무대인 UFC에서 유일하게 5차례 챔피언에 오른 랜디 커투어는 올해 46세다. 그는 남들이 은퇴를 고려할만한 33세에 거친 이종격투기 무대에 데뷔했다. 커투어와 3차례 싸워 2차례 승리한 척 리델의 나이도 이제 40세다. 일본의 입식격투기 무대인 K-1에서 명성을 날리는 세미 슐츠(36), 피터 아츠(39), 제롬 르 밴너(37)도 30대 중·후반이다.

◆다이아몬드 위의 노장들

미국 프로야구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선수가 많다. 지난해 12월 하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연봉 800만달러에 1년 계약을 맺은 좌완투수 랜디 존슨(46)이 대표적이다. 1988년 몬트리올에서 데뷔한 뒤 20년간 마운드를 지켜왔다. 전성기 때 그의 대명사였던 패스트볼과 여전히 메이저리그 대표 명품구질로 꼽히는 슬라이더로 여전히 강타자들을 요리하고 있다. 그의 노익장은 기록이 말해준다. 지난해 그는 184이닝을 던져 11승10패 방어율 3.91, 탈삼진 173개의 성적을 거뒀다. 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시속 90.8마일(약 146㎞/h)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좌완투수 제이미 모이어는 더욱 놀랍다. 1962년생인 그의 나이는 47세. 1986년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했으니 랜디 존슨보다 경력이 2년이나 더 많다. 그는 지난해 196.1이닝을 던졌다. 성적은 16승7패에 방어율 3.71. 2007년 은퇴할 때 훌리오 프랑코는 49세였다. 46세에 은퇴한 '강속구 투수' 놀란 라이언은 44세에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그렉 매덕스는 42세인 지난해 은퇴했다. 약물 파동으로 체면을 구긴 로저 클레멘스(47)는 물론 톰 글래빈(43), 커트 실링(43)도 중년에도 여전히 마운드를 지켰다.

타자로서는 20년간 빅리거 생활을 해온 켄 그리피 주니어(40), 모세스 알루(43), 루이스 곤잘레스(42), 제프 켄트(41), 프랭크 토마스(41) 등이 고령 명단에 들어 있다. 500홈런-500도루의 기록에 빛나는 홈런왕 배리 본즈는 올해 45세가 되지만 약물 파동 위증으로 기소를 당한 상태라 빛을 잃었다.

일본에는 요코하마의 구도 기미야스(46)가 최고령이다. 주니치의 야마모토 마키(44)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재일교포 3세인 한신의 4번 타자 가네모토 도모아키(41)도 있다. 가네모토는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며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다.

◆코트·그린 위의 노련미

농구 코트에서도 40대 선수들이 뛰고 있다. 미국의 NBA에서는 베테랑 센터인 디켐베 무톰보가 43세의 나이로 여전히 코트 위를 뛰고 있다. 그는 지난 시즌 휴스턴 로키츠에서 야오밍의 백업센터였다. 야오밍이 부상을 당하자 주전센터로 활약하면서 미국농구 사상 '40대 플레이어 1경기 20리바운드 이상(22개)'을 기록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도 2001년 두 번째 복귀했을 때 38세였다. 전설의 센터 카림 압둘 자바는 1989년 42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그는 NBA 통산 득점 1위(3만8천837점)에 올라 있다. 역대 득점 2위 칼 말론은 41세, 로버트 패리쉬는 43세 때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했다.

골퍼 중에는 '백상어' 그렉 노먼이 대표적이다. 15세 때인 1970년에 골프 선수가 된 그는 현재 54세. 그러나 골프 외에 골프 코스 디자인, 스포츠웨어, 골프 장비, 주택 관리 등 복합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브리티시오픈에서 공동 3위에 올랐다. 3년간 주요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음에도 올린 성적이었다.

◆한국의 노익장 선수들

한국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선수들은 있다. 야구계에서는 한화의 송진우(43)가 그렇다. 1989년 빙그레 이글스에 입단한 뒤 줄곧 선수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2006년 8월 국내 최초 개인 통산 200승 기록을 세운 바 있다. 한화의 플레잉 코치 김동수는 올해 41세, 삼성의 양준혁, SK 가득염, 히어로즈 전준호는 올해 40세가 된다.

농구계에서는 지난해 은퇴한 표필상이 40세로 기록을 세웠다. 허재(44) 전주 KCC 감독은 2004년 4월 은퇴 당시 39세였다. 현역 최고령 기록은 이창수(40·모비스)가 뒤를 잇고 있다. 문경은(38·SK)과 이상민(37·KCC)도 고령 선수 계보에 올라 있다. 프로골퍼 '탱크' 최경주와 마라토너 이봉주 등이 올해 39세로 불혹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일반인들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덕군청 사회인야구팀에서 에이스로 활약중인 김영배(61) 기획감사실장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마운드를 지키고 있다. 지난 4월 매일신문이 주최한 제6회 소백산 마라톤대회에서는 77세의 이원식 옹이 5㎞ 코스를 완주해 화제를 모았다. 각종 사회인 운동에서 이처럼 40대 이상을 만나보기란 이젠 어렵지 않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 수명 늘고 영양 좋아져 노익장 선수 '우후죽순'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20대 중반부터 노화가 시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기량을 겨뤄야 하는 스포츠 무대에서 중년의 스타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츠 스타나 일반인들의 활동 연령이 늘어난 것은 인간의 수명이 전반적으로 연장된 것과 관계가 있다. 김기진 계명대 체육학과 교수는 의학 기술이 발달한데다 영양학적으로 몸에 좋은 음식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점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인식·심리적 요인, 유전적 요인도 있다. 정신력이나 의지에 따라 인간의 능력에 변화가 올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세포 내 대사기능 수행 유전자가 후천적·환경적인 배경에 따라 변모한다는 논리다. 사회심리학적인 요인도 있다. 경제적 보수나 대가를 바라면서 체력 유지나 자기 관리에 대한 강한 동기유발이 생기기 때문이다. 과학적 트레이닝법을 개발해 훈련에 적용함으로써 나이가 들어도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조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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