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일 "총진군의 나팔소리 높이 울리며 올해를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의 해로 빛내이자"라는 제하의 신년공동사설을 발표했다. 대내적으로 '사회주의 자립경제 강화', 대외적으로 '비핵화 및 평화이미지' 제고, 대남관계에서 '6·15와 10·4선언의 성실한 이행 촉구' 등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2일 신년 국정연설을 통해 대내적으로 '비상경제정부체제 구축', 대외적으로 '글로벌 외교', 대북관계에서 '의연하면서도 유연한 자세 견지'를 밝혔다. 남북관계 측면에서 양측의 태도와 입장은 지난 1년에 비춰 전혀 변화가 없는 듯하다. 올해도 경색국면의 지속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지난 1년의 남북경색에 대해 남북한 모두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북측은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은 조국통일의 표대인데, 남측이 양 선언에서 탈선하여 시대착오적인 대결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경색국면이 야기되었다고 주장한다. 남측은 이명박 대통령께서 직접 상설연락대표부 설치 제안 및 전면대화 제의에도 불구하고 북측이 호응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경색국면의 책임은 북측이 크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책임전가는 변화에 대한 인식차이와 숨겨진 정치적 의도가 남북한 모두에게 있는 듯하다. 남측은 10년 만의 보수정권으로의 교체와 한미동맹 강화라는 한반도의 정치안보환경 변화를 북측이 잘 모르고 있다고 불평한다. 북측은 6·15시대라고 불리는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 발전을 남측 보수정권이 왜곡하면서 오히려 대결과 대립의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남북한 모두 자신의 입장변화를 '약함의 표시'로 인식하는 듯하다. 이는 남북관계를 제로섬으로 보는 냉전시대 인식의 전형이다. 올해에는 냉전의 사고에서 벗어나, 남측의 보수정권은 김정일 체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 김정일 정권은 남측의 보수정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북측은 대남 적대의식을 고취시켜 체제결속을 이끈 측면이 있다. '지상의 낙원'이라는 북한이 지난 10년에 걸쳐 남측에 대한 지원 요청은 자존심과 체면의 손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하에 자존심과 체면의 손상을 나름대로 견디어왔으나 '지원을 요청하면 검토하겠다'는 남측 보수정권의 태도에는 더 이상 체면 손상을 허락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이 터지고, 김 위원장의 와병설 속에 대북전단살포가 이루어지고, 유엔 대북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 참여는 대남 대결자세를 더욱 확산·심화시켰다. 남측도 대북 무시전략하에서 체제결속을 이끈 측면이 있다. 대통령께서 미국의 언론을 통하여 상주연락사무소 설치를 일방적으로 제안했다. 6·15와 10·4선언에 대한 북측의 성실한 이행 요구에 대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지난 시기 남북 간 합의서의 전반적인 이행 요구로 맞대응하였다. 전단살포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수단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대화자세가 돼 있다고 하면서도 대화 재개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촛불시위에 놀란 이명박 정부가 남북관계에 신경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촛불정국 이후에도 대북정책 기조와 입장에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혹시 대북정책 전환이 집토끼인 보수층의 결집을 훼손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앞선 것이 아닌지 궁금하다.
2008년은 남북한 모두 잃어버린 1년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선진국가건설과 김정일 정권의 강성대국 건설의 완성연도가 2012년이다. 남북 양측은 나름대로의 5개년 계획하에서 힘찬 출발을 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든지, '한미관계가 잘되면 남북관계가 잘된다'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든지 등 수많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잃어버린 1년'이 되었다. 김정일 정권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 정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경협과 교류의 확대 등을 대남목표로 정하였으나 대남비난과 대남압박만 난무하였다.
2009년 새해에는 남북한 모두 잃어버린 1년을 채우기 위해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 상호체제 존중의 원칙에 의해 대남비난과 대북 전단 살포를 중지하고, 당사자 해결원칙에 의해 인도적 문제 해결에 협력하고, 국제협력에 의해 한반도 비핵화의 진전을 이루려는 자세와 노력이 견지된다면 2009년은 한반도 평화증진과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역사적 해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양무진(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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