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80세로 태어나 18세를 향해 늙어간다면 인생은 무한히 행복하리라."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이다. 싱싱하던 몸이 점차 시드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면 얼마나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희망만 있다면,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것 아닌가.
'세븐' '파이트 클럽' '에이리언3' 등 다소 자극적이며, 역동적인 영화를 감독한 데이빗 핀처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그의 전작들과 달리 따뜻한 정서가 스크린에 철철 묻어나는 영화다.
기이한 운명의 한 남자가 힘든 상황에서도 살고, 배우고, 사랑하는 여정을 통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지 않은가'라고 묻고 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날.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단추 사업으로 유명한 버튼가(家)의 아이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는 숨을 거둔다. 그리고 아이의 외모를 본 아버지는 충격에 휩싸여 양로원 계단에 아이를 버린다.
갓 태어난 아이는 80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피부는 쪼글쪼글 주름지고, 호흡은 가쁘고, 뼈는 관절염에 걸려 있다. 머리가 빠지고, 몇 가닥 남은 것도 새하얗게 새어 있다. 곧 임종을 맞을 것 같은 아이는 양로원의 흑인 여자 퀴니(타라지 헨슨)의 보살핌을 받으며 커간다.
벤자민(브래드 피트)이란 이름을 얻는 아이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서서히 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관절염이 사라지고, 걸을 수 있게 되고 머리털도 새롭게 난다. 어느 날 또래 소녀 데이지(케이트 블란쳇)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0대 후반이 되었지만, 모습은 여전히 60, 70대이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도 세상으로 나간다. 배를 타고, 20대를 넘어서는 2차 세계 대전에도 참전한다.
그래도 잊지 못하는 데이지. 지구 반대편에서도 잘 때면 그는 어김없이 "잘자! 데이지"를 속삭인다. 이처럼 엇갈린 운명의 사랑이 있을까. 서서히 젊어지는 벤자민과 서서히 늙어가는 데이지. 마치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 같다. 마침내 비슷한 나이의 외모로 만났을 때 "이제야 만났네!"라는 말은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잘 보여주고 있다.
퀴니는 얘기한다.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을 뿐 마지막 도착하는 곳은 같다." 그 종착역은 죽음만이 아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사랑의 안착점일 수 있고, 마침내 한 인간으로 온전히 설 수 있는 한 변곡점일 수 있다.
이 영화의 스토리와 설정은 기이하다.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1922년 단편소설이 원작이지만 설정만 빌려와 이야기를 덧댔다. 판타지 멜로로 분류되지만, 단순한 사랑이 아니라 삶에 대한 풍성한 성찰을 얘기한다.
'누군가는 번개에 맞고, 누군가는 예술가이고, 누군가는 수영을 하고, 누군가는 단추를 잘 알고….' 그렇게 무수한 사람들이 무수한 삶의 궤적을 그려준다. 벤자민도 마찬가지다. 첫사랑에 가슴이 녹고, 처음으로 유곽에서 동정을 잃고, 또 바다로 떠나고, 고향을 그리워한다.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의 삶이다. 80세에서 18세로 가든, 요람에서 무덤으로 가든 모든 삶은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역설한다.
이 영화는 언뜻 '포레스트 검프'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새털처럼 가벼운 삶이 어떤 초콜릿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듯, 벤자민의 삶도 우연성 속에 던져진 한 마리 벌새와 같은 것이다. 세계 대전을 비롯해 서사적 판타지로 그려낸 것도 그렇다.
브래드 피트가 서서히 젊어가는 벤자민을 호연했고, 코가 큰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어느 영화보다 매력을 뿜어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이다. 아이러니와 우연, 예측 불가능함 속에서도 삶은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2일 개봉. 166분. 12세 관람가.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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