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싱글즈, 뮤지컬로…봉산문화회관 31일까지 공연

"젠장!"

나난은 자신의 스물아홉 생일날 아침을 놀리듯 축하하는 코러스들의 노래에 한 마디를 뱉는다. 패션 디자이너의 꿈은 멀리 있고, 회사에선 상사에게 놀림이나 당하는 월급쟁이 신세. 그런데 내년이면 벌써 서른이라니! 설상가상 남자 친구는 아침 댓바람부터 뜻밖의 '선물(이별)'을 전화로 날리더니 회사에선 상사의 실수를 대신 덮어쓰고 좌천된다. 내 인생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지? 내년이면 서른인데.

대구 봉산문화회관에서 31일까지 공연 중인 뮤지컬 '싱글즈'는 겉으로는 쿨하지만 오늘의 상처와 내일에 대한 불안으로 살아가는 청춘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일본 소설 '29세의 크리스마스'를 원작으로 했지만 우리에겐 영화 '싱글즈'로 더 친숙한 작품. 스물아홉이 대변하는 잔인한 현실과 이제는 가물가물해진 꿈, 그리고 도무지 풀리지 않는 연애까지, 좌충우돌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싱글즈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있는 '뮤비컬(영화와 뮤지컬의 합성어)'의 장점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탄탄한 원작, 맛깔스런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는 영화를 그대로 따라간다. 다 아는 이야기에 생동감과 재미를 불어넣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와 대사, 음악이다.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와 대사는 큰 매력이다. 스물아홉 생일날 이별을 통보받은 나난은 "이 나이에 무슨 새로운 사랑을 하라고?"라며 흐느낀다. 호기롭게 사표를 쓴 동미에게 룸메이트 정준은 "사표 쓰고 나올 때 멋있지, 나오고 나면 하나도 안 멋있다"고 핀잔을 준다. 다 때려치우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는 위로에 나난은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라고 말한다. 몇 개의 삽입곡은 처음 듣는데도 귀에 착 감길 정도로 좋다. 나난이 부르는 노래, "27살 땐 꿈이 있었지, 22살 때는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고, 20살 때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 되는 것이었어.('마이 드림스' 중)"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빨간색 하이힐 모양을 한 침대 등 무대 장치는 특색이 있고, 이야기 전개 속도도 빠르다.

나난과 동미, 정준이 함께 울고, 웃고, 상처주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런 방황과 고민을 할 수 있는 스물아홉이 한없이 부러워진다. 공연 문의 1588-7897.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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