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고산자

박범신 지음/문학동네 펴냄

"내 지도에서 독도를 뺀 것은 무인도이기 때문"

'역사(과거)가 미래를 규정하고, 현재가 역사(과거)를 다시 쓴다. 미래뿐만 아니라 과거 역시 출렁출렁 흐르고 변한다.'

박범신의 신작소설 '고산자'를 읽으며 다시 든 생각이다. 과거나 역사는 정해져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사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평가받고 다시 쓰이고, 그래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다.

소설가 박범신이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는 것은 그의 소설 주제나 문체가 '늙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틀에 갇히거나 구애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번 소설에서는 '사족'에 가까운 말을 한다.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을 작가 박범신도 '한'일간의 영토 논쟁'에 관한 한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이 소설 속에는 고산자 김정호와 김삿갓 김병연, 또 김정호의 오래된 지기 혜강과 위당 등이 경상남도 통영의 수군 통제영에서 만나 술자리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자리에서 김정호와 김병연은 논쟁한다.(물론 이 장면 역시 소설로 읽어야 한다)

김병연은 이 자리에서 "고산자가 그린 지도에는 어째서 대마도와 우산도(독도)가 없소?"라고 따지듯 묻는다.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동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가 워낙 작은 무인도라서 뺐습니다만."

"작은 섬이라고 빼다니.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땅이라던가, 그 우산도가?"

"아닙니다!"

고산자 김정호는 자신의 대동여지도에서 우산도를 뺀 이유를 작가 박범신의 입을 통해 이렇게 설명한다.

'풍랑 때문에 가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지도의 생명은 축척의 정확성이다. 다른 지도들을 보면 울릉도 옆에 우산도가 바싹 붙어 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표기다. 울릉도에 머물며 우산도를 다녀온 사람들을 통해 확인해보면 우산도는 울릉도에서 이백여 리 가까이 떨어진 섬이 확실하다. 내가 우산도를 대동여지도에서 뺀, 제일 큰 이유는 판각이라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다. 대동여지도는 목판본 지도다. 울릉도에서 우산도까지 거리를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무것도 없는 빈 목판을 여러 장 끼워야 한다. 목판 한 장을 만드는 데 많은 힘이 들어간다. 또 나의 대동여지도는 사람살이를 이롭게 하자는 뜻으로 만든 것이다. 우산도가 우리 영토가 아니어서 새겨 넣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으니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목판본으로 제작하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모든 섬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새겨 넣을 수 없는 노릇이고, 그럴 필요성도 없다. 필사본과 목각본의 다른 점이다. 제작과정의 어려움과 효용성 때문에 우산도를 뺀 것이다.'

김정호는 이렇게 덧붙인다.

"판각의 불편함 때문이라든가 목판본 문제라든가 하는 제 설명이, 지도 제작자로서 아주 당당한 변명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목판본이라는 한계는 현재로선 제 능력 밖의 문제입니다. 우산도를 뺀 것은 오로지 그 때문입니다. 우산도는 신라 때부터 우리 국토였음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인간 김정호를 다룬 소설에서 이 부분을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그럼에도 작가 박범신이 이 부분을 굳이 넣은 것은 '독도에 대한 일본의 터무니없는 욕심'을 겨냥한 것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도대체 왜, 대동여지도에 독도를 그려 넣지 않아 오늘날 독도를 제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인들의 말거리를 만들었을까. 중국과 아라사가 각각 제 것이라고 우기는 압록강 하구의 녹둔도나 두만강 하구의 신도는 대동여지도에 당당히 그려 넣었으면서, 왜 간도 일대는 모두 빠뜨렸을까.'

박범신이 김정호와 김삿갓의 논쟁형식을 빌려 굳이 우산도(독도)를 거론한 것은 독도를 그려 넣지 않았던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인 셈이다. 말하자면 김정호는 사람살이의 쓸모를 중심으로 지도를 제작했으며, 또 관청의 지시나 지원을 받지 않고 제작하는 만큼 목판 제작의 비용이나 제작의 어려움 때문이 있었음을 밝힌 것이다. 어쨌거나 '고산자 김정호'를 소설로 쓰면서 '독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은 쓴맛을 남긴다. 이는 작가의 입을 빌린 김정호의 지적대로 '지도 제작자의 일이 아니라 정치가의 일'인 셈이다.

소설 '고산자'는 일찍이 제 나라 제 강토를 깊이 사랑한 한 남자 김정호의 고독과 지도 제작에 대한 열정을 그린 소설이다. 김정호는 우리 강토의 시작과 끝, 지난날과 앞날, 형상과 효용, 요긴한 곳과 위태로운 곳을 그려 '널리 백성의 삶을 이롭게' 하는 데 모든 생애를 바쳤다.

그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 없다. 그는 다만 사람살이의 저울이요, 균형추가 되는 지도를 나라가 독점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으로, 온 강토를 걸어 다니며 그렸다.

"조정과 양반이 틀어쥔 강토를 백성에게 나눠주자는 것이고, 조선이라는 이름의 본뜻이 그러하듯, 강토를 세세히 밝혀 그곳에서 명줄을 잇고 있는 사람살이를 새롭게 하고자 한 것뿐이다. 땅의 흐름과 길을 잘 몰라 떠도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김정호는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 제작자이며 지리학자로 존경받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은 김정호가 너무 상세한 지도를 그려 첩자로 오인받아 감옥에서 죽었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대동여지도를 그리기 위해 백두산을 10여 차례 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생존 시기도 추정일 뿐이고, 고향은 물론 본관도 신분도 설(說)로 전해질 뿐이다.

작가 박범신은 인문학적 통찰력과 작가적 상상력으로 인간 김정호가 걸었던 끝없는 길과 고독한 삶을 복원하고 있다. 소설을 통해 독자들은 고산자 김정호가 그린 '땅 위의 길로서 지도'와 '그가 살았던 인생의 길'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들 모두는 '지도 제작자'인지도 모른다. 인생이 결국 저만의 '인생지도'를 그려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 출발하고, 그런 자리에 도착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359쪽, 1만1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대동여지도의 특징=대동여지도는 목판본 지도, 즉 인쇄본 지도였기에 일반에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이전의 지도들이 대체로 필사본이어서 제작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관청이나 궁중에 소장돼 있었다. 그런 점에서 대동여지도는 진정 '사람살이'를 위한 지도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도로에 10리마다 점을 찍어 지도의 축척은 물론, 거리를 직접 알려주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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