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 노인복지 수준이 9층이라면 한국은 1층"…안필준 대한노인회장

누구나 늙고 죽는다. 아이였다 어느 듯 노인이 된다. 그 사이 청춘이 있고 잘 나가던 시절 '왕년'이 있다. 우리나라 노인(만 65세이상) 인구는 현재 500여만명이다.

안필준(77) 대한노인회장도 70년 전 어린아이였다. 어린이날(5월5일)에 태어났다. 그 아이는 군인이 됐고 월남전에 참전했고 육군대장까지 올랐다. 보건사회부 장관도 지냈다. '말 그대로' 왕년에 한가닥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실 '아이와 어른과 노인' 아이러니 같지만 하나다. 길게 잡아도 100년이라는 시간 안에선. 현재 우리나라 10명 중 1명이 노인, 20년 뒤에는 10명 중 3명이 노인이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인 것. 향후엔 노인도 노인 나름일 것이다. '60 청춘, 90 노인'이라는 말도 나올 법하다.

실제 노인이 돼 노인의 복지와 권익에 앞장서고 있는 안 회장을 2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사)대한노인회 중앙회에서 만났다.

그는 나이는 저만치 떨쳐버린 청춘의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11년 전 일본 토호대학에서 의학박사(노인병 전공)를 취득했고, 4년 전 건강에 관한 책 '올드보이의 합창(60세가 되니 살맛이 난다)'을 펴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어르신 건강유지 10계명' ▷매년 건강진단 받기 ▷하루 3끼 식사를 천천히 소식하기 ▷야채와 과일 많이 먹기 ▷피곤하면 바로 쉬고, 옷은 앉아서 갈아입기 ▷3백(설탕, 조미료, 소금)과 약을 반으로 줄이기 ▷즐겁게 3사(인사, 감사, 봉사) ▷화나면 1분간 참고 덕담하기 ▷술은 절주, 물은 많이 마시기 ▷매일 1시간 이상 운동하기 ▷많은 행사에 참석해 크게 웃고, 떠들고, 춤추기를 소개했다.

안 회장은 대한노인회가 걸어온 길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노인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노인복지(老人福祉)'에서 '노인권익(老人權益)'으로, '노인봉사(老人奉仕)'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한다고 했다. 노인들이 앉아서 복지찾고 서서 권익보장에 나서기 전에 발로 뛰며 이 사회에 봉사하고 적극적으로 권리를 찾는 시대가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안 회장을 통해 향후 노인들이 누려야 할 행복한 삶을 들여다봤다.

◆대한민국 노인복지는 1층탑

안 회장은 전 세계 노인복지의 수준을 9층탑에 비유하며 우리나라는 아직 기초단계인 1층탑에 불과하다고 자체 평가했다. 그의 9층탑 이론에 따르면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3국이 최상의 노인복지가 구현되는 9층에 해당한다고 했다. 국가가 노인복지의 모든 것을 보장하는 그야말로 노인천국 국가.

이어 8층탑은 영국을 비롯한 캐나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 영연방 국가들. 특히 영국은 철의 여인 대처가 복지에 대한 수술을 단행하기 전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를 확립한 복지 종주국에 해당하는 나라.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선진국들도 노동자와 노인에 대한 법적 권리를 잘 보장해 7층탑 국가로 평가했다.

철저한 경쟁사회를 추구했던 미국은 노인복지에 대한 개념이 뒤늦게 확립돼 아직 5층탑 정도의 복지수준. 일본은 고령사회를 진입하면서 노인들을 위한 각종 혜택이 생겨나는 등 3층탑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기초생활보장법이 통과돼 노인 8%는 국가로부터 생활을 보장받고 있지만 나머지 대다수 노인들은 이제서야 겨우 노인 기초연금 7만8천원을 받는 게 전부"라고 했다. 또 "국가에서 예산을 대폭 늘려 대한민국 노인 누구나 국가로부터 일정 연금을 받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회장은 심각한 노인 자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현재 하루 평균 노인 1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는데 이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 청춘을 받친 이들을 이렇게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해선 안 된다는 논리였다. 그는 "대한노인회에서 '노인자살예방대책위원회'를 세워 상담사 700명을 양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노인 자살을 절반 이상 줄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노인도 단체생활 잘 해야

안 회장은 일본 노인들이 우리나라 노인들보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유에 대해 "단체생활을 잘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자기 위주로 혼자 생활하다보니 더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워져 정신건강을 해치게 된다"고 말했다. "탁구, 테니스, 배드민턴, 게이트볼, 가벼운 트레킹, 등산 등 뭐든 노인들끼리 모여서 여가 및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 노인건강에 제일 좋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무리하지 않는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운동은 하면서도 2억개의 폐 세포에 산소를 공급하면 그만큼 좋은 공기를 마시게 돼 무병장수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안 회장 자신도 아침, 저녁으로 운동을 하면서 심호흡(단전호흡) 등을 통해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대한노인회의 '경로당 활성화 방안'도 소개했다. "노인의 권익신장과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전국 5만3천여개의 경로당에 노인대학을 운영하고 공동작업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노인대학은 1년에 120시간만 들으면 수료증까지 줘 배울 기회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노인취업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2005년에는 2만5천명 취업을 목표로 했다 실제 3만1천여명을 취업시켜 목표를 초과달성했다. 올해에는 3만9천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4만명 이상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안 회장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노인들도 자신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의 경륜과 노하우를 이 사회에 다시 돌려줄 필요가 있다"며 "젊은 패기와 열정만으로는 이 사회가 잘 굴러갈 수 없기 때문에 노인들의 적극적인 사회봉사와 참여가 절실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대한노인회, '정치단체 아닙니다'

안 회장은 정치적 색채가 짙다는 세간의 오해와 편견에 대해 "500만 노인들과 250만 회원들의 권익과 권리를 보호하고 위해 대통령에게도 여당과 야당 대표, 해당 부처 장관들을 만나 압력 아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이는 최소한의 권리를 찾기위한 투쟁과정으로 봐달라"고 해명했다.

그는 더 억울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대한노인회가 특정 소수의 몇몇 사람들만 호의호식하는 곳은 더더욱 아닙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작정 비판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는 또 "경로당은 할 일 없는 노인들만 가는 곳이 아니며, 노인들이 모여 즐거움을 나누는 곳"이라며 "'내가 이 나이에 경로당에 가게 됐나'라는 말도 하면 안된다"며 경로당에 대한 인식전환도 촉구했다.

한편 대한노인회는 안 회장과 문희 수석부회장을 축으로 16개 시·도 연합회, 245개 지회, 2천22개 읍·면·동 분회, 5만6천여개 경로당, 326개 노인대학 등을 갖고 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프리랜서 장기훈 zkhaniel@hotmail.com

※안필준은? 1932년 충북 충주 출생. 청주고, 육군사관학교 12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료,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 일본 토호대학 의학박사(노인병 전공). 월남전 참전, 육군대장(1군 사령관) 예편. 노태우 정권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 역임, 대한노인회 중앙회 부회장(2001), 전국노인복지단체협의회 회장(2000) 역임. 현 한석(韓石)건강연구소 소장, 제13·14대 대한노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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