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읽기]●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어린 소년이 직접 목격한 사실들만 기술

독일 작가 '한스 페터 리히터'의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라는 책을 읽었다. 어린이'청소년 책을 주로 출판하는 보물창고에서 펴냈으며, 주인공 소년의 내레이션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 한스는 1925년 독일 쾰른에서 출생해 대학에서 심리학과 사회학을 공부했고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이 책 외에도 '우리는 거기에 함께 있었다''젊은 군인들의 시대' 등을 썼다.

소설의 시대 배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1925년,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저축해둔 돈이 바닥났다. 이제 막 인플레이션을 치러냈기 때문에 아빠에게 당장 그럴듯한 일자리가 생길 가망성은 없었다. 어디를 가나 곤궁과 실업이 불어나고 있었다." 이때 주인공 소년이 태어난다. 소년 가족은 다가구주택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다. 아버지는 실직상태였지만,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치는 가족의 생활은 지극히 평화롭다.

작가는 차분하고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건조한 문체로 어린 소년이 직접 목격한 사실들만을 기술해나간다. 주인공 소년의 바로 위층에는 슈나이더씨 가족이 살고 있다. 슈나이더씨는 우체국 공무원으로 생활이 안정돼 있고, 주인공 소년과 1주일 간격으로 태어난 프리드리히 슈나이더라는 아들이 있다. 아래위층에 살고 있는 데다 비슷한 나이의 아이들이 있는 관계로 주인공 소년의 가족과 슈나이더씨 가족은 가까워지게 된다.

그리고 집주인 레쉬씨. 뚱뚱한 레쉬씨는 수영복 대리점 사장으로부터 시작해 도매상 사장까지 된 사람이다. 그가 소유한 도매상과 셋집은 그의 제국이며, 고용인들과 세입자들은 모두 그의 종복과도 같다.

선량한 보통시민인 주인공 가족이 처한 현실은 당시 독일의 경제상황을 말해준다. 슈나이더씨 가족은 생활이 안정돼 있었기에 이웃으로서 베풀 수 있는 호의를 베풀었고, 그때까지는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는 생활이다. 그런데 사회가 변한다. 히틀러가 등장하면서 반(反)유태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곳곳에서 유태인 성토대회가 벌어지고, 반유태 단체들이 만들어진다.

주인공 소년도 소년단에 들어가게 되고, 소년의 아버지도 단체에 가입하게 된다. 그 단체에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오랜 실업도 끝나고, 당원에 가입한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빨리 승진하게 된다. 그 전까지 소년의 아버지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히틀러의 당원이 되는 것이다. 대신 슈나이더씨 가족은 점점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공무원인데도 직장에서 해고되고, 집 주인으로부터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드디어 사람들은 광신적인 분위기에 휘몰려 유태인들의 가게를 습격하고 반유태인주의를 선동하며, 유태인들이 모든 악의 근원인 것처럼 선동하는 사람들에게 동조하게 된다.

주인공 소년의 아빠는 순전히 이웃의 호의로 독일을 떠나라고 충고해 주지만, 슈나이더씨는 수긍하지 못한다. "왜 내가 이곳을 떠나야 하지요? 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고 이 나라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어요. 내가 다른 나라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 독일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의 일반적인 의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후 슈나이더씨 가족은 그 도시의 다른 유태인들처럼 처절히 몰락하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보통 사람이 어떻게 사회 전체가 저지르는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경제적 곤궁 때문에 취업을 하기 위해, 혹은 재미있어 보여서 히틀러가 만드는 각종 조직에 가입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에 동참하는 것이다. 또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공격성과 분노'증오를 사회적 약자에 쏟아 붓기도 한다. 당시 독일에서는 그 대상이 유태인이었다. 학살당한 유태인의 수가 엄청났고, 유태인 박해를 소재로 한 문학작품과 영화들은 무척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이 감동적인 이유는 전쟁이 무엇인지, 히틀러가 누구인지 한마디도 나오지 않으면서 그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회 전체가 저지르는 범죄를 방관하거나 소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든다. 고아가 돼 비참하게 죽어간 프리드리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 아, 지금 같은 시대에 죄없이 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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