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 푼이라도 더 남기면 오래 못간다"

일본의 상도 / 홍하상 지음

1. 오사카 덴만 풍경: 일본 전국에서 생산된 과일, 채소, 씨앗, 담배, 면 등은 덴만의 청과물 시장을 통해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2. 오사카 도지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경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오사카 도지마에 쌀 시장을 열었다. 지방 다이묘가 생산한 모든 쌀은 오사카 도지마로 올라와야 했다. 3. 천칭봉: 오미 상인은 천칭봉을 어깨에 메고 행상을 다녔다. 이들은
1. 오사카 덴만 풍경: 일본 전국에서 생산된 과일, 채소, 씨앗, 담배, 면 등은 덴만의 청과물 시장을 통해 일본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2. 오사카 도지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일본 경제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기 위해 오사카 도지마에 쌀 시장을 열었다. 지방 다이묘가 생산한 모든 쌀은 오사카 도지마로 올라와야 했다. 3. 천칭봉: 오미 상인은 천칭봉을 어깨에 메고 행상을 다녔다. 이들은 '천칭봉을 어깨에 메는 순간 천냥의 돈이 들어온다'는 말을 남겼다.

일본에는 5대 상인이 있다.

교토 상인, 오사카 상인, 오미 상인, 나고야 상인, 도쿄 긴자 상인. 이들은 길게는 1천년 이상, 짧게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나름의 상도를 만들어왔다.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일본의 대기업은 모두 일본의 5대 상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현재 교토에는 1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점포가 여섯 개 정도 있다. 결혼용품 가게 겐다는 1천300년, 부채 가게 마이센도는 1천200년, 인절미 구이 가게 이치와가는 1천10년이나 됐다. 100년 이상 된 점포는 500개가 넘는다. 이들의 '상도DNA'는 오늘날 교토에 자리 잡은 세계 최강 기업 닌텐도, 교세라,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와코루 등 30여개 기업으로 유전됐다.

오사카에는 578년에 창업한 건설회사 곤고구미가 지금도 건재하다. 400년, 500년 된 기업이나 가게는 부지기수다. 오사카 상인은 무엇보다 신뢰와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돈으로만 맺은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믿었으며, 이익에만 혈안이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믿었다. 그들은 인격과 신용이 재력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믿었고 예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사카 상인의 그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 현대 기업이 바로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파나소닉 그룹, 미쓰이 그룹, 아사히 맥주, 산토리 위스키, 노무라 증권이다.

일본의 '개성 상인'으로 불리며 '일본 상인 중의 상인'으로 꼽히는 오미 상인. 그들은 400년 이상 모기장과 약을 팔아 부와 상도를 축적했다. 오미 상인들은 천칭봉(天秤棒 ; 어깨에 나무 봉을 올려 메고 양쪽에 물건을 매달고 가는 것)을 어깨에 걸치고 걸어서 북으로 1천km 떨어진 홋카이도, 남으로 1천km 떨어진 규슈까지 행상을 다녔다. 홋카이도가 개척된 것은 1890년이었다. 오미 상인은 홋카이도에 아이누족이 수렵으로 살아가던 1500년대 중반에 이미 그곳으로 행상을 다녔다. 오미 상인은 1600년대에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과 태국까지 다녔다. 오미 상인은 '천냥천칭'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천칭봉 하나면 천냥을 벌 수 있다는 말이다. 도요타 자동차, 일본생명, 무역상사 이토추와 두멘 그룹 등은 모두 오미 상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그 위치 때문에 요즘은 나고야 경제권에 포함된다.)

나고야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정권이 키운 상업도시로 나고야 상인은 40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다. 미쓰비시 그룹, 신일본 제철, 히타치 제작소, 혼다자동차, 자동차 부품 업체 덴소 등을 탄생시켰다.

나고야식 경영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차입 경영'이다. 자기 자본 한도 내에서 사업을 하고, 이익이 나면 내부 유보로 쌓아두고 다음 사업을 준비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요타 자동차 역시 무차입 경영으로 유명하다.

나고야 경제권의 경영 방식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로 요약될 수 있다. 그들은 모험을 싫어하고 타지역에 진출할 때나 자신의 영역 안에서라도 새로운 사업을 벌일 때는 매우 신중하다. 타지역으로부터 자본이 유입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같은 지역의 사업가들끼리는 결속이 매우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고야 경제권은 '거품 경제'를 좇아 큰 이익을 내는 일도, '거품 경제'가 꺼진다고 흔들리는 경우도 드물다.

도쿄 역시 길게는 400년 짧게는 100년 이상 된 점포가 400여개나 있다. 소니, 시세이도, 샤프 전자 등은 도쿄 상인들이 탄생시킨 첨단기업이다. 도쿄 상인들은 '가격은 비싸다, 그러나 품질은 최고다'를 목표로 한다. 이들은 특히 정찰제 거래, 상품의 질이 좋고 나쁨을 분명히 고객에게 알리는 것을 상도 계명으로 한다.

일본의 5대 상인들에게는 공통된 철학이 있다. 이들은 돈을 남기는 것을 하(下), 가게를 남기는 것을 중(中), 사람을 남기는 것을 상(上)으로 쳤다. 오늘날 일본 상도의 바이블이자, 일본인의 상도를 체계화 시킨 이시다 바이간의 책 '석문심학(石門心學)'은 이렇게 말한다.

"물건을 팔 때 중요한 것은 소비자인 상대방도 납득하고 상인인 자신도 납득하는 것이다. 상대와 자신이 모두 잘되는 것이 진정한 상도다."

이시다 바이간이 활동했던 1600년대 후반과 1700년대 초반의 상인들은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남기는 것은 결국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시다는 '한 푼이라도 더 이익을 남기려는 태도는 오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망한다'고 설파했다. 상행위의 목적은 이윤 자체가 아니라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데 있다고 믿었고, 이런 믿음이 상업의 성공을 이끌었다. 이시다는 상인의 존재 이유는 이윤의 정당성 확보에 있다고 믿었다.

정직과 성실, 근검절약 역시 성공한 일본 상인의 공통된 태도였다. 특히 노동의 가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농부는 하루 여섯 시간 일해서 한 달에 쌀 석 섬을 얻는다. 상인은 하루 여덟 시간 일해서 한 달에 쌀 석 섬 한 되를 얻는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역시 '석문심학'에 담긴 철학이다. 석 섬이나 석 섬 한 되나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하루 두 시간이나 더 일하는 조건이라면 무의미해 보인다. 그러나 빈둥거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다. 일본 상인들은 노동을 귀하게 여겼다. '노는 것보다는 공짜로라도 일을 하는 게 더 낫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노동을 통해 인격을 수양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책 '일본의 상도'는 여러 장의 삽화와 그림이 있어 더 흥미롭다. 304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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