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정말 괜찮은 남편이고 싶었는데…."
저(곽삼용·48·서구 중리동)는 지금 직장암과 간암으로 투병 중입니다. 벌써 4기라고 하니 발견이 너무 늦었죠. 저는 지난해 연말부터 변비 증상을 보였습니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동네 약국에서 약만 사다 먹었었는데 올 4월 직장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인 줄도 모르고 몇 달을 그냥 지내는 사이 벌써 암덩이는 간과 임파선까지 전이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 여름에는 간과 임파선 절제술을 또 받아야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두 달 만에 다시 검진을 받았는데 간에 또 작은 암덩이가 생겨나 조만간 재수술을 받아야 한답니다.
제가 병에 걸리고 나니 평생 생계를 감당하느라 궂은 일 가리지 않고 했던 착한 아내는 스스로를 탓하기까지 합니다. 아내는 "내가 너무 무능하다고 닦달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암에 걸린 것 아니냐"며 "미안하다"고 합니다. 평생 가장 노릇 제대로 못하고 고생시킨 것도 모자라 이렇게 또 큰 고통을 주게 되니 저는 아내에게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착한 아내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네요.
큰아들(중3)은 지적장애 3급 장애인입니다. 최근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혼자 학교도 오가고,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할 정도가 되지만 말을 몇 마디 나눠보면 답답하다는 것을 느낄 정도의 아이입니다. 첫 돌이 될 무렵부터 다른 아이들보다 말이 늦고, 걸음마를 떼는 것도 늦어 걱정을 했었지만 그냥 애써 무시하고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워낙 없는 살림에 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재활치료를 받기도 해봤지만 한 달에 수십만원의 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한 달 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자라면 좀 나아지려니…'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이죠.
몇 달 전 학교 담임선생님이 아내를 학교로 불렀습니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의 장래를 위해 차라리 장애 판정이라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졌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장애아 특수학급으로 진학시킬 예정입니다.
아들이 장애판정을 받으면서 아내는 많이 울었습니다. 여느 가정만 같았어도 큰아들 치료에 같은 노력을 다 기울였을 테지만 제가 IMF때 사업에 실패하고 신용불량자로 사회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사실 먹고 사는 것도 간신히 해결해 왔습니다. 아내가 공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해 버는 80여만원으로 네 식구가 먹고 살아야 했으니 아들의 치료는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남편인데도 아내는 저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온갖 몸에 좋다는 약재를 매일같이 챙겨주고 있습니다. "제발 살아 곁에만 있어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당장 살고 있는 집의 사글세가 끝나 계약을 연장할 돈도 없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사글세를 연장하려면 250만원이 필요하지만 두 차례의 수술비를 감당하느라 통장은 바닥나버렸습니다.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 것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지만 아내는 또 "암환자에게는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이 좋은데 햇볕도 잘 들지 않고 곳곳에 곰팡이가 슨 집에 살게 해 미안하다"고 합니다.
제 막내아들은 이제 고작 일곱 살입니다. 내년에 초등학교를 입학하게 되면 가뜩이나 부모의 손이 많이 갈 나이지만 저는 암으로 투병 중이고, 아내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공장에서 하루종일 노동을 해야하니 못난 아버지인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암만 치료된다면 이제 정말 든든한 가장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제와 너무 뒤늦은 후회일까요. 착하기만 한 아내, 지적장애로 평생을 누군가가 돌봐줘야 할 큰아들, 이제 일곱 살인 막내아들에게 정말 제대로 된 아버지 노릇 한 번 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en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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