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대구에도 시민재단이 있어야'(매일신문 8월 18일자) 제하의 칼럼을 보고 몇 분이 의견을 주셨다. '어렴풋하게 고민하던 것이 정리가 되었다' '칼럼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좀 더 있었으면 좋겠다' '시민센터를 얘기하는 것인지 시민재단을 얘기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등이 관심의 내용이다. 어떤 공무원은 이메일을 통해서 의견을 주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지난번 글에서 분명하지 않은 점을 보충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와 더불어 '시민재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지역재단과 뭔가 혼란이 있겠다 싶어 이번에는 지역재단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지역재단 운동을 전개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말을 빌리면, 지역재단은 지역사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곳으로, 지역재단은 지역 주민들이 공익적 목적의 기금을 만들어서 그 기금으로 공익활동을 하지만 자금난에 처한 공익단체들이 지속적이고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관이다. 따라서 단체에 배분함으로써 지역사회의 과제를 해결하는 자조적이고 공동체형인 나눔 네트워크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부와 나눔, 투명한 회계, 배분, 공익활동, 공동체라는 말들이 어우러진 사회적 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서 출자하여 설립한 재단(문화재단)이나 특별법에 근거하여 설립된 재단은 여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재단운동은 아름다운재단, 천안의 풀뿌리희망재단, 김해 생명나눔재단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다. 또 말 그대로 지역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재단이 있다. 좀 생소한 듯하지만 그 기능이나 역할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낯설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우리 사회에 널리 깔려 있는 계(契)가 일종의 지역재단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계는 매우 오래된 역사가 있고 그 모습이나 기능에 있어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시대별로 대표적인 종류에 따라 조합적 기능, 종친회 기능, 사설금융기관의 기능, 두레와 같은 공동노동작업의 기능, 관혼상제 부조 기능, 동계(洞契)의 기능을 수행했다. 이 중에서 특히 동계의 기능에 주목하고자 한다. 현대에 와서 낙찰계나 번호계 등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여 지금은 대부분 친목과 사설금융기관, 사적 네트워크의 기능만이 남아 있다. 그렇지만 계는 가장 기본적인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상호 부조, 공동작업을 통한 동네 단위의 공동체 형성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렇게 볼 때 계의 기능과 지역재단의 기능이 매우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금을 조성하여 마을의 현안을 공동으로 해결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동계의 전통을 지역재단의 밑거름으로 보는 것이 크게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사적 친목 기능으로 축소된 계일지라도 회비를 모아서 기부를 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계조직에서도 그러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어느 지역보다 사적 네트워크로서 계조직이 많은 지역사회에서 이를 공익적으로, 공동체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좀 더 열려진 방향으로, 사회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역재단 운동이 성공할 충분한 토양을 갖고 있다고 본다. 지역에서도 이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때이다. 현대 도시사회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익활동단체들은 대부분 열악한 재정 여건에 시달리고 있다. 지방정부, 기업,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사회적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다시 시민사회로 흘러가게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시급하게 조성할 때이다.
한편 시민재단(혹은 시민센터, NGO센터)이 풀뿌리 공익 활동에 대해 상담, 지원, 정보 제공, 프로그램 지원, 공간 제공 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한다면 지역재단은 기금 조성과 배분이 가장 큰 임무라는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어느 것을 먼저 시도해야 하는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있다. 지역의 여건과 노력에 따라 두 가지가 동시에 실현될 수도 있고 어느 것도 실현되지 않을 수 있다.
대구사회가 희망을 말하고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하나씩 만들어 나가면 된다고 본다.
윤종화(대구시민센터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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