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정치가들은 민심을 얻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돈'을 뿌려주는 포퓰리즘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아편처럼 가장 빠르게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포퓰리즘은 국고를 축내고 자칫 국민들의 근로정신을 병들게 하거나 모럴 해저드를 전염시킨다.
폼페이가 망한 것도 물리적으로는 에수비오 화산 폭발이 원인이었지만 이미 화산 폭발 전에 정치가들의 포퓰리즘에 의해 망국의 길에 들어섰던 좋은 역사적 예다. 당시 번성했던 폼페이의 부유한 선거 출마자들은 유권자 시민들에게 원형 경기장의 비싼 관람료를 다투어가며 공짜로 대신 대주고 빵과 간식거리까지 제공했다. 도시가 흥청거리자 사흘에 한 번꼴로(1년에 100회 이상) 검투 경기가 열렸다. 경제의 주류 계층인 부자 정치꾼들의 주머니가 급격히 얇아지고 시민들 사이엔 일을 하지 않는 풍조가 퍼져나갔다. 도시 경제가 돌아갈 리 없었다. 먹고살기 위해 집집마다 내놓은 전세가 홍수를 이루며 빈부격차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거리에는 서로서로 '○○에게 저주를 내리라'는 계층 갈등과 반목의 악플들만이 나붙었다. 망국의 길로 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폼페이 시장 후보가 아닌 21세기 한국의 자타칭 CEO다. 똑같은 100만 원의 돈과 똑같은 시간을 줬을 때, 평범한 국민은 200만 원밖에 못 불리거나 50만 원으로 까먹어도 그는 300만 원으로 굴려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있으리라 믿고 뽑은 CEO다. 그런 그가 CEO답지 않게 '이상한' 정책을 내놨다.
이른바 '미소(美少)은행' 이다. 자립이 어려운 서민에게 5천만 원 미만의 소액을 좀 더 쉽게 대출해 준다는 정책이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부축해 일으켜 주는 일은 착한 정책이고 꼭 필요하다. 그런데 왜 이상하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가? 미소은행이 '이상한' 시책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면, 먼저 주는 쪽의 쌀독 형편과, 받는 쪽의 확실한 자립 가능성, 주는 방법의 합리성이 먼저 국민에게 납득돼야 한다.
3가지 구휼(救恤)의 조건을 두고 따지자면 MB 정부의 미소은행은 발상부터 '이상한 은행'이다. 첫째 쌀독 형편부터 아니다. 나라는 빚이 많으니까 대기업에서 1조 원을 걷고 기존 금융권에서 3천억 원을 받아내고 국민들이 맡겨 놓은 은행의 휴면예금 7천억 원을 끌어다 쓰겠단다. 내 지갑은 잠그고 남의 주머니를 빌려 생색은 내가 내는 모양새다. 지금 국가 채무 중 국가세금과 직결되는 적자성 채무는 작년 약 131조 원에서 MB 집권 후 166조 원으로 35조 원이 증가했다. IMF나 OECD도 한국정부의 재정지출 축소를 권고해 오고 있는 상황이다. 나라 쌀독이 아직 포퓰리즘에 빠지기에는 넉넉잖다는 얘기다. 재벌기업 돈을 얻어내겠다지만 이미 기업들은 갖가지 구휼성 준조세를 내고 있다. 1조 원이란 자본을 기업의 고용과 생산 투자 쪽으로 돌리는 게 더 효과적으로 자립을 돕는 길이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받는 쪽은 과연 5천만 원 미만의 대출액으로 빚에서 탈출, 생계를 확실히 세울 수 있는가? 칼국수, 통닭집 하나 내는 데도 기천만 원이 든다. 먹고살고 5% 이자 줘가며 대출 상환의 자립이 몇%나 가능할까. 차라리 10마리의 물고기보다 1대의 낚싯대를 사주듯, 생색낼 대상을 줄이더라도 제대로 일어설 만큼 빌려주라. 운영 방법은 더더욱 이상하다. 합리성이 없다. 수많은 은행과 제2 금융권이 골목마다 있는데 왜 200~300개 은행 점포를 또 새로 만든다는 건가. 기존은행, 저축은행 창구에 '미소창구' 하나만 더 내면 200개 점포 설치 비용, 인건비 낭비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굳이 기존 은행에서 1조 원 받아내 줄 바에야 그 은행에서 바로 빌려주면 더 능률적이란 상식조차 외면하고 있다.
누군가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이나 포퓰리즘의 유혹에 스스로 빠졌다는 느낌이다. 좋은 나눔도 동기와 방법과 결과가 나쁘면 '북한 퍼주기'와 다를 게 없다. 새 시대에는 제발 가면의 분칠보다 순박한 가슴의 정치를 하자. 쏟아내는 갖가지 친서민정책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대책인지 포퓰리즘인지 잘 가려가며 펼치시라. 나라 곳간이 걱정돼 하는 충고다.
金 廷 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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