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대구를 생명력 있는 도시로

최근 '2009년 세계도시축전'이 열리는 인천을 다녀왔다. 인천대교, 송도신도시 등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하는 인천을 보고 건설업계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부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많은 건설물량이 아니라 나를 정작 가슴에 와 닿게 한 것은 송도신도시 한복판에 있는 미추홀(고구려시대의 인천 옛 지명)분수였다.

로마 라보나 분수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이 분수는 지진에도 끄떡없고 20~30년을 내다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찾았을 땐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오후였다.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분수 주변에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인기 그룹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 음악에 맞춰 많은 시민들이 물을 뒤집어 써가며 춤을 추며 즐기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관람객들도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고 연인들은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바빴다. 저녁에는 음악과 분수에다 조명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어디서나 보기 힘든 장관이 펼쳐졌다. 조그마한 분수 하나가 도심의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고 휴식처를 안겨주는 작은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서울 광화문 거리에서 느낀 점은 인천 미추홀분수 이상이었다.

서울, 청계광장이 시민들에게 휴식, 문화에다가 이벤트 장소를 제공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새로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도심 한복판에 새 생명력을 불어넣은 듯했다. 이순신 장군이 12척 배로 명량대첩에서 승리하는 등 23전승을 올린 것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는 분수, '12'23'은 최고 18m의 물줄기에 무더위를 날려버릴 만큼 우렁찼다. 연이은 광장에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삼삼오오 모여 도시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있었다. 서울시는 폭 34m 길이 550m의 광장을 만들기 위해 편도 8차로의 차도를 5차로로 줄였다 한다. 용적률이나 교통흐름 효율성만 생각해온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교통량이 전국 최고 수준인 광화문거리에 살아 숨 쉬는 쉼터 제공을 위해 6차로나 차도를 줄였다는 것은 얼마나 신선한 충격인가,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해 육교, 고가도로 하나를 신설하는 일에도 이리저리 허둥대는 우리로서는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다.

시민을 위한 공간, 보행자를 위한 도로, 생명력이 있는 도시환경을 위한 발상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일본 후쿠오카 캐널시티(canal city)는 도시재개발의 일환으로 호텔, 상업시설, 엔터테인먼트시설 등을 계획한 프로젝트다. 기존의 효율성 중심의 사고에서 탈피해 상업지역을 인위적으로 나눠 그 사이에 거대한 운하를 설치해 운하로 구분되어진 공간은 보행자를 위한 동선을 만들고 중간 중간에는 확장된 작은 광장을 둬 가고 싶은 후쿠오카의 명소로 만들었다.

호주의 조지 거리(George Street)는 시드니 중심가를 통과하는 주요도로 중 하나로 인도폭이 3.6m로 매우 좁고 혼잡한 도로였다. 시 당국은 1990년대 중반에 2.6㎞에 달하는 이 도로 구간 개조에 착수해 인도폭을 6.1m 확장하고 보도블록을 새롭게 단장해 보다 많은 카페를 만들고 이벤트를 개최토록 했다고 한다.

폭염도시로 불리는 대구에도 시민들이 즐기고 머무르기 위한 생명력 있는 도심을 만들기 위한 많은 시도들이 계획되거나 시작되고 있다.

대구를 가로지르는 신천을 친환경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시도된 결과 중 하나가 지난 7월 17일 개장돼 지난달 30일까지 올여름 대구시민들에게 인기상한가를 쳤던 신천 물놀이장이다. 대구시건설본부에 따르면 신천 용두 1보, 용두 2보, 상동교 상류 등 3곳에 조성된 물놀이장에 하루 평균 1천520명이 찾았고 개장일 동안 6만8천여명이 이용하였다 한다. 이처럼 시민들의 호응이 높았던 것은 1급수인 가창댐 물 5만t을 매일 방류해 깨끗한 수질을 유지한데다 수심 80㎝로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물놀이장 바닥과 주변 휴식공간에 두께 10㎝의 모래를 깔아 해변의 느낌이 나도록 조성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다.

또한, 대구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동성로와 중앙로는 보행자 우선 거리 조성을 위해 분주하다. 범어네거리에서 수성못 사이의 개천을 항상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하천으로 변화시키는 계획도 나오고 있다. 특히 실개천 공사를 하고 있는 중앙로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다가올지 모르지만 단순히 걷는 거리에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낙후된 중앙로는 친환경적 걷는 거리로 바꾸어야 하고 나아가 가족단위로 즐기는 공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서 획기적인 야간 경관조명, 소규모 포켓광장, 다채로운 예술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체험의 장 조성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대구에는 도원지, 성당못, 단산지, 수성못, 망월지, 신서지 등 호소(湖沼)가 많이 있다. 그동안 이들 호소를 열악한 재정보전을 위해 매각하거나 줄여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대구의 옛 호소 주변을 재정비하여 단순한 녹색으로의 재탄생을 넘어 시민들이 향유하는 문화중심지로 거듭나게 해야 한다. 세계육상대회를 기점으로 대구가 시민이 살아 숨 쉬는 명품도시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한다.

조종수 대한건설협회 대구시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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