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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독도, 한국 직접 관리 증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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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 국토연구 현장사진 첫 발굴…"日 거짓주장 판명"

1947년 8월 제4차 울릉도·독도 국토구명사업에 참가한 한 산악인이 독도 동도 몽깃돌 해변에서 냄비를 씻고 있다. 서도 탕건봉과 동·서도 중간에 위치한 삼형제 굴바위가 배경에 보인다. 사진 우측 끝 점선 부분의 바위모습은 1948년 6월부터 52년까지 실시된 미군 폭격연습으로 현재 그 형태가 달라져 있으나 사진은 폭격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역사연구소 최인진 소장 제공
1947년 8월 제4차 울릉도·독도 국토구명사업에 참가한 한 산악인이 독도 동도 몽깃돌 해변에서 냄비를 씻고 있다. 서도 탕건봉과 동·서도 중간에 위치한 삼형제 굴바위가 배경에 보인다. 사진 우측 끝 점선 부분의 바위모습은 1948년 6월부터 52년까지 실시된 미군 폭격연습으로 현재 그 형태가 달라져 있으나 사진은 폭격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역사연구소 최인진 소장 제공
1947년 8월 울릉도·독도 국토구명사업에 참가한 학술조사단 대원들이 울릉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산악회 제공
1947년 8월 울릉도·독도 국토구명사업에 참가한 학술조사단 대원들이 울릉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산악회 제공
폭격으로 달라진 모습.
폭격으로 달라진 모습.

1947년 미 군정하에서도 독도가 우리 손으로 직접 관리되었음을 보여주는 사진이 처음 발굴됐다.

사진역사연구소(소장 최인진)가 이달 초 지역 출신 사진작가 고(故) 최계복 선생 탄생 100주년 사진전을 위해 미국에서 최 선생의 작품을 입수, 분류하던 중 1947년 조선산악회 제4회 국토구명(究明)사업 울릉도·독도 학술조사에 최 선생이 사진보도반원으로 참가해 촬영한 독도 사진이 다수 확인됐다. 이는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독도를 관리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반박할 수 있는 귀중한 증거물이다.

조선산악회는 고 송석하 국립민족박물관장을 대장으로 자연·인문학자, 산악대원, 사진보도원 등 64명으로 구성, 1947년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13일에 걸쳐 울릉도, 독도에서 광범위한 학술조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학술조사 당시 독도까지의 항해에는 해군 통의부 소속 군함 '대전호'가 지원된 것으로 알려져 당시 국토구명사업이 미 군정의 지원 아래 국가적인 사업으로 전개됐음이 확인됐다.

당시 국토구명사업과 관련, 서울대 인류학과 전경수 교수는 "1947년 독도에서 국토구명사업이 전개됐다는 것이 지금까지 구전(口傳)돼 왔으나 보고서나 사진 등 이를 증빙할 만한 자료가 없어 사실 규명에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이번 사진 자료는 해방 후 주일미군 폭격장 지정 훨씬 이전부터 독도를 우리가 관리해온 것을 확인해주는 확실한 증거"라고 말했다.

한편 일본 외무성의 홈페이지 독도 홍보 팸플릿에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는 1952년 주일미군의 폭격훈련구역으로 지정됐으며, 일본 영토로 취급되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충진기자 cjje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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