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자연염색박물관은 멀리서 보기에 '금싸라기 땅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 집은 자연염색에 대한 한 사람의 지난한 노력과 사랑이 이루어낸 평생의 결과물이다.
이 땅은 1979년, 쪽씨 5알과 김지희(70'사진) 자연염색박물관장과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1979년 대학 부교수로 일본에 가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일본에선 수업현장에서 학생들에게 뿌리부터 가르치더라고요. 박물관에 가서 골동품을 보며 모사하고 재현하면서 1,2년을 보내고 그 바탕 위에 창작의 꽃을 피웠어요. 우린 전통을 무시하는 사회분위기였잖아요."
김 관장은 일본에서 쪽씨 5알을 구해왔다. 우리나라에선 맥이 끊기다시피 한 쪽풀이 다시 전통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다. 김 관장은 1979년 이 곳에 밭을 사서 쪽이며 홍화를 키웠다. 일년초인 쪽을 죽이지 않고 가꿔내기란 쉽지 않았다. 친정어머니는 창원에서, 김 관장은 대구에서 쪽을 부활시키고 있었던 것.
"80, 90세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자연염색에 대해 묻고 고문서를 뒤졌어요. 제가 대학교수인 만큼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은 매년 공개강좌를 열어 전국에 파급시켰죠. 관계자 치고 강연 안 들었던 사람이 없을 걸요?"
우리나라 기록에 나오는 쪽풀은 다 구해보자 싶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과 일본, 인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나는 쪽의 씨와 종자를 구해 키웠다. 문익점 못지않은 열정이다.
김 관장은 세계 유수의 박물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자연염색 장인은 있으나 현대화 작업까지 이어온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인도 섬유예술이론가 쟈스린 다하마는 그를 두고 "한국의 김지희는 농민이자 식물학자, 장인이자 예술가, 학자이다"라고 극찬했다.
김 관장은 외국을 다니며 각국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한 전문 박물관들을 많이 만났다. 왜 우리나라에는 이런 박물관이 없는지 안타까워하던 그는 '박물관'이라는 새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래서 1990년 즈음부터 자연염색 관련 자료 및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2003년부터 박물관을 짓기 시작했다.
"돈 드는 건 모르고 꿈만 꿨던 것 같아요. 기와만 해도 1억원이나 들었죠. 집을 짓다가 돈이 모자라 옆에 땅을 팔고 퇴직금까지 다 쏟아부었어요."
사설박물관에 대한 지원 금액이 얼마 되지 않아 매년 적자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박물관에서 왜 돈을 받느냐'고 입장료를 아까워한다.
쪽밭이었던 땅이 지금은 자연염색박물관이 된 것은 이렇듯 우연이 아니다. 이젠 땅값이 너무 올라 30여분 거리에 쪽밭을 가꾸고 있다.
2005년 박물관을 완공하고 '자연염색박물관'이라 이름붙였다. 김 교수는 흔히 '천연염색'이라 사용되던 용어를 '자연염색'으로 바로잡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천연'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자연염색은 염료의 작용 등으로 끊임없이 변한다. 전문가들도 대부분 '자연염색'이란 용어에 동의하는 추세다.
그러는 동안 자연염색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다. '물 빠진다' '우리나라엔 시기상조'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젠 선진국에서 불어온 웰빙 열풍에 힘입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제 우리의 자연염색은 염색 종주국인 인도가 위협을 느낄 정도로 급성장했다.
"우리나라 사계절이 얼마나 축복인지 몰라요. 사계절이 있어 염색재료 종류가 참 많고 질이 좋거든요. 우리나라 약재의 약효가 뛰어난 것과 같은 이치예요."
비슷비슷한 유물 일색인 국공립 박물관들 사이에서 자연염색박물관은 신선한 존재다. 김 관장은 팔공산 일대가 문화벨트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은 잘 모르죠. 팔공산에는 불교 문화와 예술가들이 포진해있어요. 자연염색박물관도 팔공산의 소중한 관광자원의 하나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세정기자 beacon@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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