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좋은 사회의 시작은 인성교육에서

일전에 아버지 멱살을 잡고 폭행한 딸에 관한 뉴스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자식에게 먹일 홍삼액을 아버지가 먹어버렸다는 것이 그 패륜적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하던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동방패륜지국'이라 해도 할 말 없게 된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 없다.

자식을 제 몸처럼 아껴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싶어하는 마음은 본능과 같은 것이다. 이 점에서는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동물은 새끼가 자라 어른이 되면 어미 품을 떠나가 버리고 부모의 존재는 까마득히 잊어버린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맹자는 그 차이를 '기희(幾希)'라고 했다. 거의 희미하다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동물과 사람의 차이를 부정한 듯한 말이지만, 실상 맹자의 본의는 거의 없는듯하지만 엄연히 있는 그 작은 차이가 사람을 동물과 다른 사람이게끔 하는 요소이고 그러한 차이를 벌려나가는 것이 사람의 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는 것은 지능의 차이 외에도 사람만이 그러한 인륜을 알고 실천하기 때문일 것이다.

인륜 중에서 가장 큰 것이 효이다. 효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타의 부러움을 받을 만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삼년상이나 시묘살이는 어버이를 여읜 자식의 애통한 마음을 반영한 의례이고, 탈상 후에는 제례를 통해 어버이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길이 이어가도록 했다. 그래서 옛날 사회를 돌아보면, 나라와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 치고 지극한 효자가 아닌 이가 없었던 것은 충과 효가 둘이 아님을 증명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맺어진 한국의 전통 가족제도에 대해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1889~1975)는 "미래의 이상적인 가족 사회는 한국에 있다. 3대가 모여 살면서 선대의 지식과 사랑을 후손에게 가르쳐주는 한국의 가족제도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미래 사회 모습이다"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남들의 부러움을 사던 한국의 가족이 와해되고 그에 따라 효라는 인륜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계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인해 늙고 병든 부모를 낯선 곳에 버리거나 학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한 노인전문 기관에서 노인학대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85.7%는 친족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중 아들에 의한 학대가 51.5%로 절반 이상을 자치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이 효를 강조한 것은 지친(至親)인 부모에 대한 효도가 모든 사회적 실천의 출발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친(親親)-인민(仁民)-애물(愛物)이라고 해서 남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실천이 어버이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핵가족화의 심화에 따라 아이들이 조부모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부모가 일터로 나감으로써 아이들만 홀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의 인성교육을 대신할 학교도 입시 위주의 지식 주입에 치중하느라 덕성을 기르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신만을 위하고 남에 대한 배려는 모르는 이기적이고 메마른 인성의 소유자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이 실상은 우리가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히 기성세대가 책임을 느껴야 한다. 제 자식만을 귀하게 여기고 남을 딛고 서는 공부가 성공의 지름길인 줄로 생각해 무한경쟁으로 내몬 것이 결국 독이 되어 자식을 망치고 사회를 병들게 한 것이다.

이제 사회를 변화시키고 개선하려는 실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가정에서 올바른 인성을 지닌 자녀를 기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효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또 자녀와의 대화나 편지쓰기를 통해서 혹은 밥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사랑이 담긴 가르침을 통한 인성 교육에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학교에서의 인성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남을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으로 서로 경쟁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덕성이 근본이고 재능이 그 다음(德本才末)이라고 여긴 선인의 가르침을 따라 지'덕'체를 겸비한 사람을 만들 수 있는 방안을 교육과정에 도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의 노력도 필요하다. 만시지탄이 있긴 하지만, 사회 각 부문에서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해 구체적인 실천을 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가 하나가 되어 올바른 인성을 기르기 위한 이러한 노력들을 확산시켜 나간다면 어두운 우리 사회에 희망의 서광이 보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노인은 자기의 생을 편히 마치고 젊은이는 모두 일할 수 있으며, 노약자 '병자 '불쌍한 자들이 부양되는" 동양의 오래된 이상인 대동(大同) 사회의 실현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김병일 한국국학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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