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속 예술 산책] 코요테 어글리 / 제리 브록하이머 제작(2000년)

주제곡 '달빛과는…' 경쾌함에 담긴 뜨거운 열정

혁명가 체 게바라는 "아군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적군이 없다는 것은 더욱 슬픈 일이다"라고 했다.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고, 도전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다. 게바라는 또 "마음속에 생겨난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현실과 부딪쳐 그것을 날려 버리는 것뿐"이라고 했다.

열정 앞에는 늘 높은 벽이 있고, 그 벽을 뛰어넘을 때 인간승리의 감동 드라마가 펼쳐진다. 제철공장에서 용접일을 하는 '플래시 댄스'(1983년)의 18세 소녀가 마지막 비상(飛翔)을 할 때 감동은 지금도 선연하다.

'코요테 어글리'(2000년)는 할리우드의 흥행 제조기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2000년판 '플래시 댄스'이다. 꿈을 좇는 젊은 아가씨의 열정은 언제나 달콤하고, 희망적이다. 화려한 야채에 맑은 드레싱이 쳐진 샐러드를 먹는 것 같다.

뉴저지의 스물한살 아가씨 바이올렛 샌포드(파이퍼 페라보). 그녀의 꿈은 싱어송 라이터가 되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아버지를 홀로 두고 뉴욕으로 온다. 자신이 만든 곡을 들고 음반사를 찾아다니지만, 냉대만 받는다. 금방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은 사라지고, 아파트에 도둑이 들어 돈마저 모두 잃었을 때 그녀는 성공보다 더욱 절박한 생존 문제에 직면한다.

이때 찾아간 곳이 '코요테 어글리'라는 스탠드바이다. 늘씬한 여자들이 춤도 추고 쇼까지 보여주는 속칭 '야한 바'이다. 선뜻 나서지 못하다가, 거기서 일하는 '언니' 들이 생각보다 건강하고 자신 있게 일하는 모습을 보며, 그 술집에서 꿈을 키워나간다.

코요테는 개과의 육식 동물이다. 여우처럼 입이 길고, 늑대처럼 생겼지만 귀가 큰 것이 특징이다. 덫에 걸리면 자기 다리를 잘라내고 도망간다고 한다.

바이올렛이 바의 큰언니에게 묻는다. "코요테 어글리가 무슨 뜻이에요?" "술이 취해서 어떤 남자랑 잤어.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그 남자가 너무 볼품없고 또 자신도 그런 거야. 팔을 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그런 때는 팔을 잘라버리고 싶지. 그것이야."

못생긴 코요테처럼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바이올렛이 두려워하는 것은 무대다. 가수가 꿈인 사람이 무대공포증이라니 약점치고는 치명적이다. 가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할 신인 무대에 선 바이올렛.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가 두려워 또 도망치려고 한다. 그때 무대 조명이 꺼진다. 그녀를 지켜주던 남자친구 오도넬(아담 가르시아)이 전원을 내려버린 것이다.

캄캄한 무대에서 가늘고 맑은 노랫소리가 들려나온다. '만약 당신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태양이 질 때까지만 기다려주세요. 오늘 밤 당신의 마음을 앗아갈 거예요. 당신은 피하려고 하겠죠. 제 키스로부터 도망가려고도 하겠죠. 하지만 그대여, 당신은 달빛과는 싸울 수 없다는 걸 아시나요?"

'달빛과는 싸울 수 없어요'(Can't Fight the Moonlight)라는 곡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에서는 사랑을 거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태양보다 더 강한 바이올렛의 달빛 같은 열정이 감각적인 멜로디에 실려 경쾌하게 흐른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은 아버지로 나온 존 굿맨 외에는 대부분 낯선 인물들이다. 여주인공 파이퍼 페라보는 북미 전역에서 실시된 오디션을 통해 뽑았고, 바에서 일하는 동료로 나오는 모델인 타이라 뱅크스, 폴란드 배우 이자벨라 미코, 브리짓 모나한 등도 비교적 낯선 배우들이다. 무명의 설움이 캐릭터들에서 이미 묻어난다.

주제곡인 '달빛과는 싸울 수 없어요'를 비롯해 영화 속의 노래들은 대부분 꿈과 열정, 성공에 대한 갈망을 담고 있다. 바이올렛이 뉴욕으로 떠나는 도입부에서 친구들이 불러주는 글로리아 게이너(1949~)의 1970년대 곡 '나는 살아 남을거야'(I'll Survive)가 대표적이다. '안녕이라는 말로 내게 상처를 주려 한 사람, 바로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내가 힘 없이 무너질 줄 알았나요? 내가 포기하고 죽을 거라고 생각했나요? 오,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난 살아남을 거예요.'

이 곡은 1995년 다이애나 로스가 편곡해서 불러 히트를 쳤고, 뒤이어 한국의 진주가 '난 괜찮아'로 번안하기도 했다.

이외 브론디의 데보라 해리가 부른 'One way or another'도 흘러나온다. '어떻든 난 널 찾을 거야. 널 찾고 말 거야. 어떻게든 난 널 이길 거야. 널 잡고 말 거야.' 남자들이 보면 섬뜩하기 짝이 없는 원한 맺힌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 곡 또한 '어떻게든'(One way or another) 성공하고 말겠다는 바이올렛의 모진 다짐처럼 들린다.

이 영화에서 바이올렛이 부르는 노래는 모두 미국의 컨트리가수 리앤 라임즈가 더빙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는 그녀가 직접 코요테 어글리 바에 나와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코요테 어글리'는 경쾌한 음악과 열정적인 춤이 어우러진 뜨거운 영화다. 성공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젊은 여인의 혹독한 시련과 처세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삶에 지쳤거나, 아니면 하루하루가 재미없다면 이 영화로 몸을 추스르는 것도 괜찮겠다.

김중기 객원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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