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재학의 시와 함께] 「자라」/ 문성해

지하철 역 앞

토큰 판매소

오늘 불이 나고

보았다

어서 고개를 내밀라 내밀라고,

사방에서 뿜어대는

소방차의 물줄기 속에서

눈부신 듯

조심스레 기어나오는

꼽추여자를,

잔뜩 늘어진 티셔츠 위로

자라다만 목덜미가

서럽도록 희게 빛나는 것을

시인이란 다른 사람과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다만 더 많이 보려고 한다. 더 섬세하고 미묘한 관계를 만든다. 경주 남산의 그 많은 석불들을 석공들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원래 돌 속에 잠자고 있던 부처의 몸에 덕지덕지 눌러 붙어 있던 돌들을 조금씩 털어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성해의 도 돌 속에 있던 이야기이다. 문성해의 자라는 슬프다. 토큰 판매소 안의 자라 아가씨도 슬프지만, 자라 아가씨를 이끌어낸 시인의 시선에 가득 눈물이 고여 금방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슬픔이다. 원래 시인 속에 가득했던 사람 안아주기가 노출된 슬픔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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